도민칼럼-기억여행
도민칼럼-기억여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05 17:1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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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기억여행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이른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바로 순리(順理)다. 태어나서 늙기도 전에 아프거나 태어나서 아프지도 않고 사고로 죽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수많은 외침(外侵)을 당해서일까? 우리의 DNA는 순리보다 순응에 더 말 그대로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얼마 전 제주에 잠시 다녀왔다. 가서 <기억여행>이라는 연극을 한 편 보았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네 번째 작품 기획공연이었다. 벌써 8년, 누군가는 ‘또 세월호야?’라고 하겠지만 자식을 앞세운, 적어도 가족 중에 누군가를 먼저 어이없는 사고로 떠나보낸 아픈 사연이 있다면 ‘또’라는 말은 차마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아직 과정이기에 상상하고 싶지 않겠지만 언제든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말이다.

결국 일어나지 않았는가! 대명천지에 길에서 사람에 떠밀려 죽은 사건이 어디 있는가? 공연을 보러 뛰어 들어가다 압사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길을 걷다 사람들에게 깔려 죽은 일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소위 OECD 선진 국가라고 하는 이 대한민국에서 현재 일어난 참사다.

처음에는 나도 ‘거기에 무엇 하러 갔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우리 5, 60년대생들에게 이태원은 용산 미군기지와 함께 유흥과 성매매의 이미지까지도 있는 향락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주의 신화와 설화를 배경으로 무속을 연구하는 한진오 작가의 강의를 들으며 뜨끔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공동체문화를 남겨준 적이 있었나? 그는 이태원에서 죽은 아이들은 ‘거기 갔다고 비난하는 우리다’, 라는 말을 했다.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이태원은 다양한 국가의 문화가 어울리는 곳이 되어 있었다. 할로윈데이가 미국문화를 숭상해서 생겨났다기 보다 그건 그냥 젊은이들이 그 재미난 축제를 매개로 만나고 노는 날일 뿐이었다.

2022년 10월 29일 밤 2, 30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2014년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가슴을 졸였듯이! 그해에는 아이들의 수학여행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저들끼리 어울리는 축제마저도 금지당해야 하는가? 연극 <기억여행>을 보면서 엄마들의 여전한 아픔이 느껴졌다. 아직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고 거리에 나서는 모습이 그 참사 이후 8년째다. 위로는 하지만 원인은 말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가 제대로 해결이 되었다면 누구나 납득한 말한 원인을 알고 그래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권력자가 상기했다면 이런 일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월드컵축구가 16강으로 가면서 다들 12월 6일 새벽 4시 브라질과의 대결로 모든 관심이 가고 있는 가운데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 같지만 나는 실상 2002년 월드컵만큼 신이 나지 않는다. 158명이 죽었다 그 가족들, 그 지인들, 그날 그 참사를 지켜본 젊은이들, 아무것도 모른 체 신나게 놀고 있다 알게 된 많은 이들의 고통이 느껴져서이다. 거기다 교묘한 프레임을 갖다 붙이는 행태에도 화가 난다. 세월호 참사 그 이외 모든 사건 사고에 희생자이든 사망자이든 지금처럼 이름을 숨긴 적이 있었나? 유족의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기본권침해라는 언론중재위 발표를 보며 일순 유족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그날 거기에 간 것은 놀러나가서 저희들 잘못으로 죽었다는 뉘앙스를 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유족들이 동의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날 그곳에는 대한민국의 아무 죄 없는 젊은 친구들이 있었을 뿐이다. 국가가 교통정리만 잘 해 주었다면 아무도 다치거나 죽을 일이 없었다. 우리가 그러라고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다하고 권력도 만들어 준 것 아닌가! 대한민국은 젊은애들이 일하다가도 죽고 놀다가도 죽는다는 댓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언제까지 우리는 기억만 여행할 것인가!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죽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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