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담배와의 인연(2)
기고-담배와의 인연(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11 17: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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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수필가
이호석/합천수필가-담배와의 인연(2)

물론 이 사실을 남편인 종조부께서 먼저 알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자기만 알고 한동안 몰래 피우도록 숨겨 주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들딸을 낳고 중년에 들면서 자연스레 공개적으로 피웠을 것 같다.

당시 조모님들이 피우는 담배는 주로 봉초 담배(말린 담뱃잎을 잘게 썰어 봉지에 넣은 것)였다. 담배를 하도 자주 피우니까 담뱃대 안에 담뱃진이 많이 쌓여 수시로 담뱃대 대통(대꼬바리)에 붙은 찌꺼기는 뾰족한 쇠붙이로 긁어내었고, 담뱃대 속의 진은 짚 속 줄기를 밀어 넣어 제거하였다.

여름에는 담뱃불을 주로 성냥으로 붙였지만, 그 외 계절에는 거의 화롯불을 이용하였다. 가을이 들고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면 조모님 방에 들기 시작한 화로는 이듬해 늦봄까지 계속 들락거린다. 지금 생각하면 화로는 방안을 따뜻하게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담뱃불 붙이는데 더 긴요하게 사용한 것 같다.

조모께는 담뱃대와 화로가 여러 용도로써였다. 화가 날 때는 방안에서 담뱃대를 연신 빨아대어 자욱한 연기 속에 앉아서 죄 없는 담뱃대 대통으로 화로 언저리를 쾅쾅 때리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담뱃대와 화로는 담배 피우는 용구이기도 하지만, 담배 불씨를 담는 그릇이자 재떨이도 되고, 또 화날 때는 화풀이로 두들겨 패는 다용도 생활필수품이었다.

8, 90연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담배 천국이었다. 농촌의 사랑방에는 비 오는 날이나 저녁이면 마을 어른들이 이집 저집 모여 놀았다. 이때는 마치 담배 피우는 경연이라도 하듯 교대로 담배를 피워댔다. 방안의 하얀 벽지가 담배 연기에 절여 항상 누르끼리하였고 날이 갈수록 그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

또 읍면 소재지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는 관공서 사무실까지도 탁자나 책상 위에 재떨이가 필수로 놓여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지역 어른들이나 제법 높은 사람이 담배를 피웠다. 다방 출입을 하는 사람이 어쩌다가 양담배라도 한 갑 생기면 다방에서 남들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폼을 잡기도 하였다. 당시는 어느 곳이나 사람이 모이면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돈을 아끼려는 좀생이나 못난 사람으로 취급받기가 일쑤였다.

사회 곳곳에 금연 구역이 늘어나고 건강을 걱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금연하는 지금의 세태를 보면 격세지감을 가진다. 담배가 언제부터 우리 인간들과 희로애락과 함께해왔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기호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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