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러의 행운
실러의 행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2.1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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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베토벤은 교향곡 9번 〈합창〉 제4악장에서 실러의 시 〈환희의 노래〉를 4성의 독창, 4성의 합창으로 편성해서 관현악과 함께 들려 준다. 그러나 〈환희의 노래〉 시 전편을 다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성악이 시작되는 맨 앞머리에 베토벤 자신이 쓴 “오, 친구여, 이러한 소리가 아니고, 우리들은 더욱 유쾌하고, 훨씬 더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라는 서사를 붙여서 바리톤의 독창으로 먼저 들려주고 이어서 원시에 있는 몇 개의 연들은 생략하고 순서도 바꾸어 노래한다. 그러나 이 교향곡 덕분에 실러의 〈환희의 노래〉는 지금 지구 어느 구석에 가더라도 독일어 그대로 부르는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암송까지 하는 시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1759~1805년)는 여러 가지 면에서 행운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당시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공국의 한 하급 군의장교의 아들로 태어나서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이, 나라가 배정하는 교육을 받고 군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이 새로운 지우(知友)의 조건 없는 환대에 감격하여, 인간성과 동포애, 우정과 애정을 찬양하는 〈환희의 노래(An die Freude)〉를 쓴다. 중요 부분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환희여, --- / 너의 매력은 이 세상의 관습이 엄하게 갈라놓은 것을 / 다시금 묶어 놓아 / 너의 고요한 날개가 머무는 곳에 /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된다.”

“한 친구의 벗이 된다는 / 큰 행운을 차지한 사람이나, / 우아한 여인을 획득한 사람은 / 함께 환성을 올려라. / 그렇다. -- 겨우 하나라 할지라도 이 지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함께 환호하라. “

이 시가 베토벤의 주목을 받게 되어 1824년 제9 교향곡의 합창 텍스트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쾨르너는 재정적인 면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학자였던 쾨르너와의 문통(文通)으로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실러는 칸트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게 되었다. 칸트의 3 비판서를 읽고 그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의 작품에 그 이론을 반영시켰다.
실러의 행운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1788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막 돌아온 괴테를 만난다. 그 첫 만남은 서로 그리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음해 실러는 괴테의 천거로 예나대학 역사학교수로 초빙받았고, 1794년부터는 실러가 편집하는 잡지 《호렌(Die Horen)》과 《시신년감(詩神年鑑》을 중심으로 두 시인은 독일고전주의문학을 확립하는 동인관계로 발전한다. 1796년에는 강렬한 문단풍자시집 《크세니언(Xenien》을 공동제작하고, 2행연시형식(epigram)으로 당시의 문단을 신랄하게 비평했다. 1799년 실러는 바이마르의 괴테 집 바로 옆으로 이사를 갈 정도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긴밀하게 지속된다. 1705년 실러가 사망하자 괴테는 〈실러의 종(鐘)을 위한 에필로그〉 라는 시를 쓰고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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