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호칭 부르기
도민칼럼-호칭 부르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14 17:2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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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호칭 부르기

입안에서만 빙빙 돌다가 끝내 애정 표현을 못 하고 말았다. 아내와 첫 만남을 갖고 대여섯 달의 짧은 기간 연애를 하면서 “우리 같이 살자” 이런 말은 했어도 사랑한다. 좋아한다. 이런 말을 못 하기로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서로가 애정 표현을 못 했으니 같이 살면서 호칭을 만들어 부르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으며 아내도 나와 같았다.

처음 만나 살면서 호칭 사용하기에 어려움을 겪다가 생각해낸 것은 아들을 낳아 강하게 키우자!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한 글자로 철이라 짓자고 했었다. 아버지로부터 강 씨란 성을 부여받았으니 이름은 ‘철’로 짓자고 정했다. 이에 아내를 부를 때마다 끝 글자를 따서 “철아” 하고 불렀지만, 아내는 나를 부를 때마다 어물어물하며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 했다.

그런데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첫 아이가 아들이 아니고 딸아이가 태어났다. 아이 이름 자를 따서 ㅇㅇ아빠 ㅇㅇ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호칭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부부의 애정표현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술자리를 하고 왔을 때다. 잠자리에서 귓속말로 여보! 사랑해! 라고 말했던 건 벼르고 벼르다가 용기를 낸 것이다.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했더니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해야 한다며 유명 인사가 했던 말을 아내가 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라는 한용운 님의 시가 떠올랐다.

귓속말로 ‘여보, 사랑해’라는 말은 술기운을 의지하면서도 익숙지 못했었다. 요즘은 여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만, 아내는 여전히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하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는 말도 사랑 편지도 안 쓰는 것이 좋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좋아한다, 이런 말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평생(半平生)을 살 비비고 살았는데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이런 말들은 우리 두 사람에게는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가 되어 버린답니다. 새장에 갇혀 사는 앵무새의 말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 두 사람은 하나로 이루어지기 전에 두 손 꼭 잡은 건 영원히 사랑하기로 약속한 것이 답니다.’라는 윗글은 얼마 전에 아내가 속내를 밝혔던 걸 컴퓨터 파일 속에 다른 글을 쓰면서 보관해 놓은 일부분이다.

요즘 신세대들은 애정 표현을 진하게 하고 있다. 우리 때만 해도 남녀 두 사람이 손잡고 걷기라도 한다면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눈치를 살피곤 했었다. 아내와 처음 만나 데이트할 때만 해도 시내에서는 손잡고 걷지도 못했다. 한적한 공원에서도 살며시 손잡고 걷다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만 있어도 얼른 손을 떼고 걸었었다.

그런데 요즘 신세대(新世代)들은 진한 애정 표현을 길거리 공공장소 가리지 않는다. 아무 데서나 껴안고 입 맞추고 포옹하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며칠 전에 우리 부부가 의료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의자 건너편에서 스물 될까 말까 한 한 커플이 껴안고 서로의 입술을 붙였다 뗐다 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는 어찌나 민망했던지 자리를 피해야 했었다.

이에 반해 우리 부부는 사랑합니다. 좋아합니다. 여보 당신 호칭조차 부르기를 쑥스러워하고 밖에서는 손잡고 걸어 보지도 못했었다. 비록 술 한잔했을 때 귓속말로 여보, 사랑해요.라는 말을 했다지만 요즘 들어서는 우리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아내를 부를 때 여보, 호칭을 사용한다. 물론 술기운이었을 때도 여보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못 했지만,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신세대들은 더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더 진한 애정표현을 하면서도 쉽게 헤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요즘 젊은 부부를 보면 남편을 부를 때 오빠, 오빠 한다거나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아직 2세가 없는 부부라면 오빠란 호칭은 그런다 하지만, 아들딸을 둔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오빠나 아빠라고 부르는 건 맞지 않는다. 여보, 당신 호칭이 쑥스럽다면 아이 이름자를 앞에 집어넣어 ㅇㅇ아빠라고 부른다면 맞다.

부르기가 쑥스럽거나 마땅한 호칭 만들어 부르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우리 부부가 젊을 때 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며 살아도 별 불편함은 없었다고 다시 한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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