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충경공 유성원(柳誠源)을 추모한다
진주성-충경공 유성원(柳誠源)을 추모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21 17: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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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충경공 유성원(柳誠源)을 추모한다

충경공(忠景公) 유성원은 조선 초기의 대학자요, 문신이다. 사육신의 한 분으로 역사에 영원히 빛나는 분이다. 자는 태초(太初) 호는 낭간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444년 식년 문과에 급제했고 1447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수재였다.
<고려사>를 개찬할 때 참여했고 1452년 <고려사>를 다시 편찬할 때 특히 408명의 고려 인물의 열전을 찾아 기재할 때 사마천의 기전체 역사서 <史記>를 본받아 수찬(修撰)직위로 추영수(장원 급제), 추적(민부판서) 2명을 포함시킨 공적이 있다.

<고려사><고려사 열전>를 편찬할 때 최항, 박팽년, 신숙주, 이개 등과 함께 열전(인물사)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분이다. 단종대왕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귀양갈 때 영월 출신 추익한과 연계된 충성을 다하다가 자결,순국하신 분이다.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모시고 민절서원에 제향되었고 숙종 7년 사당이 설립되고 숙종 18년에 서원(書院)에 모셨다. 정조대왕 때 시호 충경(忠景)이 내려지고 고종 때 봉사손(奉祀孫)이 결정되었다.

유성원의 선조를 보면 고려 건국 초기에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량미 1천 수레를 바친 공적으로 익찬벽상공신이 되었다. 태조로부터 차달 이름을 받아 큰 아들은 車씨 성을 받고 둘째 아들은 柳씨 성을 받았다. 유씨 본관은 문화, 서산, 풍산, 진주, 전주, 고흥 등 7개 본이 대종이고 문과 급제자 425명, 정승 14명, 대제학 6명, 공신 20여 명이 있는 대족(大族)이다.

조선 개국 공신 유량(柳亮)은 좌명공신으로서 문성부원군에 봉해진 분이고 1415년 우의정에 올랐다. 그의 5대손 충숙공 유관(柳灌)은 인종 때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으나 대윤, 소윤 정권에 의해 귀양가서 죽었다. 유인숙, 유심, 유희진, 유경침 등도 판서, 참판, 대사헌에 올랐으나 당파 싸움에 화를 입고 여자들은 관비와 사노비로 나갔다. 유만수(柳曼殊)역시 조선의 개국원종공신이 되었으나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다. 유만수는 밀직부사로 왜구 격퇴의 공을 세우고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는 최영 장군에게 패하였으나 위화도 회군의 공을 인정받아 문하평장사가 되었으나 제 1차 왕자의 난에 피살되고 말았다. 사육신 충경공 유성원(柳誠源)충신을 추모하고 사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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