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任重道遠)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任重道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2.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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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나이는 28살인데 1급 지적장애를 가져 7살 정도의 지능으로 살아야 하는 딸을 둔 부모의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을 다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부모가 낮에 일 나간 사이에 이 딸이 집주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면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의 그 참담함을 무엇으로 어떻게 어디에다 토해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집주인이라는 남자가 80대라면.

그런데 그 엄마는 의외로 눈 속에 핀 한 송이 매화 같았다. 얼굴도 예뻤지만 그 마음씨가 국회청문회에 나오는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보다 더 바르고 고왔다.
“나, 많은 돈 필요 없습니다. 우리 애 아빠랑 나랑 둘이서 하루하루 일하며 이대로 먹고 살면 됩니다. 다만, 우리 같이 집이 없다고 장애자라고 하여 이리 당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그러지애…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되잖아요”

어제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그 말이 계속 내 머리를 때렸다. 이들의 처지나 형편을 보면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우리 사회로부터 가장 위로 받아야 되고 국가와 국가 권력으로부터 가장 보호 받아야 될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된 세상인지 현실은 갈수록 그 정반대로만 간다.

언제부터인지 심신이 온전치 못한 장애인이나 제대로 못 배우거나 못 자진 자들은 법으로 부터도 공공연히 홀대를 받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지난번 대통령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사람들을 보면 된다. 여기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지 않는가.   대통령 당선인이 아무리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법관 출신들을 총리후보로 지명해 본들 전직 대통령이란 자와 그 자식들부터가 한 세대를 그렇게 살고 있으니 이 땅에 무슨 법과 질서가 제대로 설 것인가. 대다수 국민들이 청문회를 보면서 “저 분 참 멋지게 사셨다”가 아니라 “이 뭐야? 그동안 나만 바보처럼 살았잖아!” 라는 탄식을 하는 판이다.

그래도 이 정도의 상대적 박탈감만 느낀 이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사회적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 그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피눈물과 원한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이며 누구로부터 그 보상을 받을 것인가. 법이 잠자는 자의 권리까지는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쳐도 최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특혜를 누리는 전리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레미저러블에서 장발장이 처음엔 5년을 선고 받지만 그게 하도 과중하니 자꾸 탈옥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가중 처벌로 결국 19년을 살게 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결과가 늘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불변의 진리다.  

불과 우리 윗대만 해도 배운 것과 아는 것과 그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며 학행일치(學行一致) 지행일치(知行一致)로 살고자 일생 동안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우리 역사의 크고 작은 변곡점을 계기로 이른바 사회지도층이요 지성인이라 자칭하는 특사(特赦)급 사람들이 이를 ‘돈행일치’와 ‘금행일치(金行一致)’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돈 있는 80대 노인도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장애인을 한두 번쯤은 성추행을 하거나 성폭행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판국에 누가 남의 집 마당에 장미 호 몇 가지 끊어 가는 것을 집주인에게는 굳이 말을 하려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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