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탈아입미(脫亞入美)
아침을 열며-탈아입미(脫亞入美)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08 15:1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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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탈아입미(脫亞入美)

어느 나라나 민족이나 기나긴 역사를 보면 그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운명적인 변곡점 같은 게 있다. 우리에게는 19세기 조선말이 아마 그런 것에 해당하리라. 그때 우리는 그 역사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멍청히 있다가 일본에게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침략을 당하고 말았다. 일본으로서는 아마 그들의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시대였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도 저들은 서구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승승장구하던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의 변방이었던 저들은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역사학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그 요인 중 하나로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근대화의 선봉장 중 하나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내세운 구호다. ‘(후진적)아시아를 벗어나 (선진적)유럽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미국함대인 이른바 ‘쿠로후네(黑船)’의 도래로 서구의 존재와 위력을 확실히 인식한 저들은 거국적으로 그 문물을 수용하며 착실히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아는 청일-러일전쟁의 승리, 조선병탄, 그리고 대만, 만주, 중국 침략, 그리고 동남아 등으로의 전선 확대였던 것이다. 하늘도 칠 듯한 저들의 야욕은 미일전쟁의 패배-항복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패전 후의 부흥과 한때 G2를 거쳐 G3가 된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탈아입구’라는 것이 일종의 비결로서 성공을 거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인들 자신은 물론 유럽인들의 의식 속에서도 저들은 일종의 ‘명예 백인’으로 자리 매김 되어 있다. made in Japan의 선호와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준 19세기의 저 ‘자포니슴’도 그 한 상징이다. 저들은 역사의 변곡점에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승기류에 올라탔던 것이다. 원래 저들에게는 바깥의 좋은 것을 본능적으로 지향하는 일종의 ‘해바라기즘’이라는 의식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살린 셈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당시의 열세와 패배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들에게 도덕적 반성을 거듭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저들은 문(文)의 역사가 아닌 무(武)의 역사가 주류였다. 강과 승은 선이요 약과 패는 악이라는 가치관이 저들의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우리가 저들보다 더 강해져서 저들을 이기지 않으면 백날 반성과 사과를 요구한들 저들은 납득할 턱이 없다.

강해져서 이겨야 한다. 천 년 전의 백마강 전투와 4백 년 전의 노량해전이 답인 것이다. 달리는 설욕의 방도가 없다. 우리는 해방 이후 우리대로 착실한 발전을 하여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룩했으며 바닥권에서 대략 세계 6위권(최소한 10위권)의 강국으로 도약했다. 거기에도 비결은 없지 않을 것이다. 그게 뭐지? 역시 역사학적-사회학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 태산 같을 것이다. 그중 하나로 우리는 ‘탈아입미(脫亞入美)’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일의 세력권을 벗어나 미국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건 일본의 경우와 달리 누가 내건 구호가 아니었다. 자연스레 흘러간 동향이 결과적으로 그리 된 것이다. 그 단초는 누가 뭐래도 하버드-프린스턴 출신인 이승만의 공적이었다. 공과나 찬반을 떠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이 참전한 625남북전쟁은 그것을 결정적으로 가속화시켰다.

우리사회 일부의 반미는 나름 이유가 없지 않겠으나 ‘미국이 없는 한국의 발전’은 성립불가능이다. 깃발 든 자도 없건만 그 ‘탈아입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 중에 한두 다리 건너 미국에 아는 친지-친구가 없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국가나 학계의 요직도 거의 태반이 미국유학파다. 법률도 제도도 다 미국식이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싸이도 BTS도 기생충-미나리-오겜도 결국 미국을 통해 히트를 쳤다. 우리 생활에 필수불가결인 MS도 구글도 애플도 유튜브도 페북도 … 다 미국 것이다. 그리고 탈아입미의 한 상징이 아마도 저 ‘이태원 참사’일 것이다. 그 젊은이들은 모두 ‘할로윈 축제’라는 미국문화에 자발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참했던 것이다. 논의해야 할 것은 물론 산더미다. 그러나 그 방향은 이미 거스를 수 없다. 우리는 더욱 더 가속페달을 밟을 필요가 있다. 반미는 사실상 의미 없다. 북한과 중국만이 쾌재를 부를 것이다. SS LG SK HD처럼 우리는 미국 깊숙이 더 들어가 저들의 심장부를 장악해야 한다. 거기에 보이지 않는 태극기를 꽂아야 한다. 실력만이 그것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아무도 들지 않겠다면 나라도 그 깃발을 들어야겠다. ‘탈아입미’다. 역사 내내 우리를 괴롭혀온 중국과 일본의 세력권을 떠나 G1인 미국으로 들어가자. 어차피 미국은 이민국가다. 들어가 깃발을 꽂으면 거기도 또한 ‘우리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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