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의 인생 행로
기고-나의 인생 행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19 14:39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호석/합천수필가
이호석/합천수필가-나의 인생 행로

나는 노년의 나이가 되어 그런지 가끔 나의 인생을 뒤돌아본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또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흔히 사람들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태곳적 이 지구가 생성되고, 인간이 처음 탄생할 때를 생각하여 흙에서 왔다고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가끔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다만,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나는 분명히 부모님의 사랑으로 잉태하였고, 어머님의 배속에서 열 달이란 세월을 무위도식하며 편안히 자라다가 정해년 섣달 초닷새 날 밤, 고고한 울음소리를 내며 이 밝은 천지를 맞이하였다.

이날 나는 한 인간으로서 운명과 팔자라는 숙명적 과제를 걸머지고 태어났고, 곧바로 지금의 내 이름으로 인생행로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어머니의 품속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처한 고난과 아픔은 전혀 모른 채 배가 고프면 울었고, 어머니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그때는 아무런 걱정 없이 내 인생이 항상 그렇게 행복할 줄만 알았을 것이다.

소년이 되면서부터 힘든 인생살이가 시작되었다. 때로는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 했고, 소먹이고 쇠꼴도 베야 했고, 땔감 나무도 해야 했다. 청년이 된 후로는 힘든 군 생활은 물론 결혼, 직장생활 등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숨 가쁘게 걸어왔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자식 삼 형제가 방긋방긋 웃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찢어진 가난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한을 가슴에 지닌 채 곳곳에서 질시와 차별을 받으며 산 세월이 더 많았다.

지금까지 오는 길이 가끔은 지름길과 꽃길도 있었지만, 대체로 숲길이나 가시밭길이었고 때로는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넘으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도 하였다.

나는 부족한 여건에서 받는 질시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은 노력하며 힘든 인생길을 걸어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나의 인생에서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주인 없는 조각배가 흐르는 물결에 저절로 떠내려가듯, 세월이란 물결 속에 나 역시 아무런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75년이 넘게 떠내려 왔다. 이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내 인생은 이미 가을에 성큼 와 있다.

지금은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것도 오색 단풍이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초가을이 아니다. 단풍이 낙엽 되어 하나둘 떨어지는 중추(中秋)의 계절에 들어선 것이다. 화살같이 빠른 세월을 생각하면,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추운 겨울도 금방 닥쳐올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빨리 들어 어른 되기를 바란 적도 있었고.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온갖 희망의 꿈속에서 헤매느라 유한한 인생임을 까맣게 잊고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장춘몽이라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종착역을 향하여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 언젠가 도달할 인생의 종착역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고, 원망하고, 아쉬워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릴까? 아니면 그동안 행복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웃음을 웃을까?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어찌 보면 하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공평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돈 많은 재벌도, 아무리 큰 권력자도 이 자연의 섭리는 피할 수 없으니 얼마나 공평한가.

그러므로 인생의 종착역에서는 이 공평함에 만족하며 아쉬움과 미련보다는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삶의 고통을 훌훌 털어버리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어머니 품속에 있을 때처럼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띠며 일장춘몽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