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차례상 앞에서
진주성-차례상 앞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24 15:0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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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차례상 앞에서

나무 제기가 빼곡하여 줄을 맞추는 격식조차 따르지 못했던 차례상이 언제부터인지 빈틈이 많아져서 널널해졌다. “식구들이 잘 먹는 것만 합시다” 하던 집사람이 차례상 앞에서 어딘지 모르게 쭈뼛쭈뼛하며 미안한 기색이다. 시동생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고 손아래 동서의 눈치도 슬쩍슬쩍 보는 것 같다. 제사상을 간소하게 차리자고 제일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제수들이었다. 다섯 번의 기제사에 두 차례의 명절 제사를 모시는 큰동서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가례에 변화를 불러온 것은 어머님이셨다.

한학자이셨던 시부님의 봉양이 지극하였다 하여 당시 문교부 산하 선행자 표창위원회로부터 효부상을 받으신 분으로 시부상을 3년 탈상을 할 때까지 삭망에는 빠짐없이 곡 상식을 올리시던 분이셨는데 자식들에는 가정의례만은 간소하게 하라셨다. 제례는 형편과 분수에 맞게 정성만 다하라고 하시며 모든 예법은 그 시대에 맞게 사람이 만든 것이라서 시대에 맞게 고치는 것 또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셨다. 개혁이었고 혁명이었다.

어머님은 벌을 받아도 내가 받을 것이니 당신 생전에 기제사는 모아서 모시라는 것을 굳이 마다하고 버틴 것도 우리 내외였는데 어머님이 손수 수의를 만드시던 해에 기제사는 양위분씩 모아서 모셔 왔다. 시큰둥한 남정네와는 달리 제수들은 대환영이었다. 제수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먹지 않는 제물은 줄이자는 것이다. 이제는 집사람도 합세하고 며느리와 질부까지 대환영이다. 침묵하는 남정네들 앞에서 여성들의 반란이다. ‘부정 앞에 침묵하는 것은 부정을 동조하는 것이다’라는 법리와 같이 침묵하는 남정네들은 침묵으로 동조한 것이다.

기제사마다 맏형으로서 도포 차림에 유건 쓰고 강신에서부터 사신까지 메와 갱에 잔술 올려서 축문 읽어 절차를 빠트리지 않는 엄격함에 대 놓고 말은 못 하고 나의 눈치만 보아왔던 그들이다. “세상이 변하면 따라서 변해야지” 했더니 기제사부터 마른 대추와 밤과 오린 문어와 마른 명태가 없어지고 생선의 가지 수도 줄고 일손 잡히는 전 종류도 줄이고 각종 포와 떡도 간소해지더니 이번 설날 아침의 차례상은 과일 종류까지 줄어 여유롭고 널널했다. 차례상의 빈자리만큼이나 마음의 빈자리가 더 썰렁하여 왠지 서운한 마음이 한동안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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