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꽃다발 선물(2)
기고-꽃다발 선물(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1 15:1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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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꽃다발 선물(2)

나는 부부가 싸운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시집살이는 더 힘들었다. 남편만 믿고 시집을 왔는데 하루에 한두 마디 했는지 기억에 없다. 어머니는 “자는 원래 말이 없고, 쓸데 있는 말만 하니 네가 이해를 해라.”하였다. 말이 없는 것은 시아버지를 닮았다며 어쩌겠나 하며 그렇게 살았다. 신혼 때는 어머니 말만 믿고 그렇게 꾹꾹 참았다.

우리가 분가를 하여 남편 직장 때문에 서울 친정집 옆에 집을 구했다. 이제 해방이 되어 깨가 쏟아지게 살자는 맘으로 행복하였다. 둘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말을 시켜 보고, 콧소리로 아양을 떨어보았다. 말이 없는 남편은 “그만 밥이나 먹읍시다.”라며 뉴스만 듣고 밥만 먹었다. 이렇게 갑갑해서 어떻게 사냐 안되겠다 싶어 일을 한번 저질렀다. 어느 해 남편이 내 생일을 잊어버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여보, 오늘 저녁 외식해요.” 했더니 “그냥 된장이나 바글바글 끓여서 맛있게 먹읍시다.”했다.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시키는 대로 하였다. 퇴근을 하고 들어오는 얼굴은 평소와 똑같았다. 잠자리에 들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자요?” 하며 어깨를 흔들었다. 남편은“왜 그래”하고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아주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를 막 쏟아 냈다. 두 시간 정도 혼자 말을 하였다. 다른 부부는 남편이 말이 많아 싸우고, 또 부인이 말대꾸하지 않는다고 싸웠다는데, 나는 기가 차고 지쳐 혼자 날밤을 새웠다. 그 이튿날 전화가 왔다. 저녁에 맛있는 치킨을 사오겠다고 했다. 생일이 지나고 나서 생각이 났나 보다.

단장을 하고 아이들과 기다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나는 방문 뒤에 숨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엄마는?” 하고 물어보았다. 모른 척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방 안으로 들어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나는 정말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장미가 몇 송이야 하고 세어 보았다. 꽃들도 내 맘을 아는지 축하해요 하는 소리가 꽃다발 속에서 들렸다. 어찌나 겸연쩍은 마음이 들던지 얼굴이 화끈했다. “여보 고마워요.” 하고 된장국을 먹는데 남편의 얼굴이 더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꽃다발 선물을 나에게 안겨 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계절이 돌아와도 함께 다녀 본일도 별로 없었다. 가족들을 위해 회사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아이들도 다 자라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일상의 변화가 없이 살아도 그저 남들처럼 살아가는 일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말이 없는 남편은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싸움을 하지 않아 그것이 도리어 더 큰 싸움이었는지 모르고 지났다는 생각을 하며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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