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고시조 산책(古時調 散策)
진주성-고시조 산책(古時調 散策)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2 15:0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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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고시조 산책(古時調 散策)

필자가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은 한학자이셨다. 그때 선생님께서 올곧게 살라고 들려주셨던 역사 이야기는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도 가끔 뇌리를 스친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이 시조는 의금부도사 왕방연이 세조의 명으로 단종(端宗)을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까지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청령포를 굽어보는 서강 강변 언덕에 앉아, 노래한 연군(戀君)의 단장곡(斷腸曲)이다.

이 시조에서 그는 참혹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신 단종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과 서러움을 절절히 표현하면서, 임금을 보호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애통해하는 회한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단종을 유배지 청령포까지 압송한 자신의 임무가 그에게는 한없이 원망스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단종에 대한 애틋함으로 괴로워하는 그에게 또 한 번 무자비한 임무가 주어진다. 금부도사인 그에게 단종을 사사(賜死)하라는 사형집행관 임무가 그것이었다. 감히 왕명을 거역할 수 없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청령포에 도착하였지만, 무슨 일로 왔느냐는 단종의 하문에 차마 사실대로 아뢰지 못하고 마당에 엎드려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이에 수행하였던 나장(羅將)이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으니 속히 집행할 것을 재촉하였으나 그는 계속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홀연히 이 일을 자청하는 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공생(貢生)이었다. 그자는 활시위에 긴 끈을 이어 단종의 목에 걸고 뒷문에서 잡아당겨 단번에 보란 듯이 단종을 교살했다. 1457년 10월 24일, 노산군(魯山君)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다. 공생(貢生), 그는 평소 청령포에서 심부름과 잡다한 일로 항상 단종을 모시던 자였다. 그런 자가 평소 정성껏 모시던 주군을 솔선하여 자기 손으로 교살(絞殺)한 것이다. 세조 왕에게 사사(賜死) 임무를 하명 받은 의금부도사도 사태가 너무도 황망해 감히 집행을 못하던 상황에서, 자신의 상전을 처형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 단종이 처형되었던 오백여 년 전의 시대적 상황이 오늘날, 이 대한민국에서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개인의 권력과 영달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는 공생들. 뜬구름 같은 하찮은 부귀를 천년만년 누릴 줄 알고 설치는 인사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 금할 수 없다. 준엄한 역사의 심판 앞에서 한낱 물거품이요 뜬구름 같은 것이 권력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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