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최장수 시전문지 월간 ‘시문학’ 종간(통권 619호)에 부쳐
도민칼럼-최장수 시전문지 월간 ‘시문학’ 종간(통권 619호)에 부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6 15:03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옥/시인·창신대 명예교수
이상옥/시인·창신대 명예교수-최장수 시전문지 월간 ‘시문학’ 종간(통권 619호)에 부쳐

며칠 전 마산의 오하룡 원로시인께서 전화를 주셨다. 요즘 로밍 제도가 좋아서 베트남에 체류 중이지만 해외에서도 한국폰을 국내용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통화가 가능하다. 이러다 보니 가끔 해외에 체류 중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을 때도 있다. 오하룡 시인은 최장수 시전문지 월간 ‘시문학’이 2023년 2월호까지 보내고 더 이상 발행할 형편이 안 돼서 기납부한 구독료 중에 잔액을 계산해 보내고자 하니 2023년 2월 15일까지 시문학사 이메일로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는 ‘월간 시문학 구독료 반환’ 통보를 받았다며, 충격을 가누지 못하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2월호 어디에도 종간 예고나 기미도 없었던 상태에서 느닷없는 종간 소식으로 많은 분들이 오하룡 시인처럼 충격을 받았음직하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1971년 8월 현대문학의 자매지로 창간된 월간 시전문지 시문학 창간호가 탑재돼 있는 걸 봤다. 붉은 색의 제호 ‘詩文學’과 역시 붉은 색의 ‘創刊號’라는 글자가 너무나 강렬했다. 창간사는 이렇다. “현대가 아무리 산문의 시대라 해도 시는 여전히 문학의 본령이요 그 영혼이다. 시의 독자가 아무리 희소해도 시는 여전히 육체의 심장이며 정신의 원천이다. 현실 앞에 아무리 시인이 무능해도 시인은 여전히 인생의 이해자이며 그 창조자다. 여기 현대문학사는 오랜 숙고 끝에 ‘시문학’이란 시전문지를 창간한다. 모든 시인들은 누구나 본지를 통하여 자신의 영혼을 새길 것이며, 모든 독자들은 본지를 통하여 자신의 인생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1971년 7월 현대문학사”

월간 시문학은 처음부터 문덕수 선생이 주도하며 현대문학 자매지로 창간하고 1973년 7월호 통권 24호부터 현대문학사에서 독립해 편집인 겸 주간 문덕수 체제로 운영되다 1977년 ‘시문학사’를 문덕수 선생이 인수해 김규화 시인이 발행인을 맡아 2023년 2월호까지 한 호도 결호 없이 발행된 우리나라 최장수 월간 시전문지다. 문덕수 선생은 월간 시문학 창간부터 2020년 작고할 때까지 일관해서 운영하며 창간 취지, 편집 방침, 책의 체제, 조판 형태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 문덕수 선생의 부인인 김규화 시인은 2020년 문덕수 선생이 작고한 이후에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시문학을 계속 발간해 왔으나 예기치 못한 급환으로 종간 편집 후기도 쓰지 못하고 몸져눕게 됐으니 어찌 하늘이 무심하다 하지 않겠는가.

문덕수, 김규화 두 분이 얼마나 한국 시단을 풍요롭게 했는지는 앞으로의 문학사가 기록할 것이다. 특히 문덕수 선생처럼 시인으로, 학자로, 문단지도자로 3개 분야에서 모두 각각 일가를 이룬 분은 한국문단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문덕수 선생은 생전인 2010년 “국가와 사회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학의 창작활동을 진작하고, 창작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작가와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관련 주변 예술가들을 고무하고 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사재를 출연해서 재단법인 심산문학진흥회도 설립했다.

김규화 시인의 급환으로 시문학사도 폐업 절차를 밟고 월간 시문학의 종간이 결정됐지만 심산문학진흥회 대표이사를 자제인 문준동 교수(공주대학교)가 맡아 문덕수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설천하는 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오는 3월 말에는 심산문학진흥회 이사회가 열린다. 김규화 시인을 이은 신임 문준동 대표이사 상견례를 겸해 향후 업무 추진방향과 함께 2월호로 종간된 월간 시문학의 진로 문제도 논의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