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규제로만 전관예우를 근절시킬 수 없다
법적 규제로만 전관예우를 근절시킬 수 없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2.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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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태/경상대학교 축산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정부의 고위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전관예우 논란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도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 등이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였다. 이제 우리 사회의 전관예우 문제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경제계나 군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후보자 모두는 형태만 다를 뿐 전관예우의 잘못된 관행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논란의 대상이 된 후보자들은 공직에서 퇴임한 이후 대형 법무법인인 로펌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고 근무했다. 그러니까 공직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활동하다가 다시 고위 공직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정 총리 후보자는 퇴직 후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2년 동안 약 6억7000만원을 받았다. 황 후보자는 2011년 8월 부산고검장에서 물러난 뒤 역시 법무법인에서 1년 5개월 간 일하며 15억9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윤 후보자도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수석을 마치고 로펌의 고문을 지낸 적이 있다. 또한 김 후보자는 무기수입 중개업체의 고문으로 2년간 2억여원을 받았다. 드러난 상황이 이럴진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대부분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당사자들은 “공직에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인정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는 국민들은 그들의 해명을 말 그대로 믿지 않는다. 사실 그들이 거액의 연봉을 받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일일이 따지기 어렵지만, 일반 변호사와의 실력 차이가 거액의 수임료의 차이만큼이나 크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삼척동자라도 그 거액의 수임료 차이만큼 어떤 ‘힘’이 작동하였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말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고 해서 국민을 바보로 알지 말라는 소리다.

공직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은 공직자 개인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공적 자산이다. 따라서 그 공적 자산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공직자들의 공직->로펌->공직의 ‘회전문 경력’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우리의 공직 사회는 로펌의 영향력 아래에서 맘몬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인맥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 특성상 후배 공직자들이 퇴직한 선배 공직자들의 청탁을 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특정 로펌 출신의 공직자가 고위 공직에 다시 진출하면 해당 로펌에 사건이 몰리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전관예우의 관례를 어떻게 하든지 타파하여야 한다. 물론 현재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법적 허점 등으로 인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변호사법은 판검사들이 퇴직 당시 근무하던 법원과 검찰청 사건을 1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로펌에 들어가면 개인 이름이 아닌 회사 차원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허점이 있다. 이에 정부는 최근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법령을 강화하겠다고 발표 하였지만, 여전히 문제는 과연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에 있다.

전문가들은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 규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개혁적인 효과는 거두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공직 사회와 법조계의 자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그 어떤 법적 규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게 현재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그러므로 강력한 법적 규제도 좋지만 공직 사회와 법조계 내부에서 전관예우의 행태를 부끄럽게 여기는 풍토 조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우리 사회에 그런 풍토가 조성된다면 강력한 법적 규제 따위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공직자들이 퇴임 후 개인적인 이익보다 공익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에 무엇보다 힘써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전관예우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공직사회와 법조계 내부의 자성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의 감시와 관련 학계의 연구 등을 통해 공직사회와 법조계 내부의 자기정당화 논리를 깰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치권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전관예우의 특별한 이득을 누리다가 다시 고위 공직자가 되는 관행만큼은 더 이상 없도록 정치권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여야 할 것 없이 전관예우를 문제 삼지만, 그 전관들을 임명한 것 역시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이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는 것은 정치권이 결심만 하면 언제든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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