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간은 선(線)에 얽매여 산다
기고-인간은 선(線)에 얽매여 산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19 14: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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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인간은 선(線)에 얽매여 산다

인간은 잉태할 때부터 선에 얽매여 산다. 어머니의 배속 열 달은 탯줄에 의해 살고, 어머니 품속을 떠나 제 발로 걸어 다닐 때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도 많은 선(線)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않으면 금방 사고가 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지식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와 인간으로서 지키며 살아야 할 선(도리)을 가르친다. 인간이 지켜야 할 선이 너무 많아 조금은 거부감을 주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선은 바로 질서를 지키는 근본이므로 이를 지키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선(線)에는 눈에 보이는 선도 있고 보이지 않는 선도 있다. 눈에 보이는 대표적인 선은 사람이나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 기찻길이다. 또 자동차 도로 표면에도 여러 선이 있다. 몇 갈래의 차선과 건널목 표시 등이 모두 선이다. 이러한 선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바로 큰 사고가 난다.

이외도 경계를 표시하는 선도 있다. 각자의 집과 집 사이에 쌓여 있는 담장이 있고, 과수원이나 전답의 울타리도 있으며, 국가 간에는 국경이라는 선이 있다. 특히 우리 한반도의 중간에는 남북을 가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험악한 철조망의 선이 있다. 이 선을 잘못 넘으면 바로 이승과 저승 간의 선을 넘어 나락(奈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선도 많다. 인간의 도리(道理)라는 윤리, 도덕의 선이 있다. 옛말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란 말도 있다. 이 말은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본분의 선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외도 스승과 제자 간. 부부간. 형제간, 친구 간, 이웃 간, 남녀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또 보이지 않는 선에는 넓은 바다 위의 뱃길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항로가 있고, 또 우리가 일상에서 지켜야 할 각종 법(法)이나 규정, 규칙 등 명문화된 선도 있다.

이러한 선들은 국가나 사회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이 선을 잘 지키지 않는 사회는 많은 혼란과 죽음이 따르기도 한다. 사법기관에서 단속하거나 수사를 하는 것은 이러한 선을 지키도록 경계하는 일이고, 선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어 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선을 지키지 않고 사고를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는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제재가 따른다.

이렇듯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지켜야 할 선도 많고, 이를 지키느라 불편할 때도 많다. 이에 비하면 인간들과 먼 거리에서 제멋대로 사는 동물들은 지켜야 할 선이 없다. 자연 속의 동물들은 숲속이나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다녀도 되고, 날아다니는 새들에게는 아예 선이란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산이나 들에서 사는 동물들이 진정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산다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동물들의 삶이 당장 우리 눈에 쉬게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약육강식의 현장(現場)에서는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살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들은 항상 더 많은 자유를 찾기 위해 투쟁한다. 특히 독재가 심한 곳일수록 더 많은 선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려고 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회에서 우리 일상의 일부를 구속하는 선을 나쁘게 볼 수는 없다. 인간에게 지켜야 할 선이 없다면 동물적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더 처참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적정한 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귀찮아 보이는 많은 제약의 선이 바로 나와 우리 모두의 생명과 삶을 지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직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수행한 업무에 대해 감사원에서 확인하는 행위를 무례하다고 하였고, 또 검찰에서 하는 어떤 수사에 대해서도 도(度)를 넘지 말라고 하였다. 감사원이나 수사 기관에서 하는 행위는 당시 대통령이 그 직분의 선을 넘는 행위를 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고, 직전 대통령이 말하는 ‘무례와 도’는 감사원이나 수사 기관의 업무 수행이 그 직분의 선을 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어느 쪽이 지켜야 할 선을 넘었는지는 차차 밝혀질 것이고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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