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보훈이야기-3월, 그날의 함성
든든한 보훈이야기-3월, 그날의 함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19 14:4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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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호/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박상호/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3월, 그날의 함성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의 첫날은 우리 민족이 목 놓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3·1절이다. 104년 전,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은 조국의 봄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지역과 계층, 종교와 이념의 구분 없이 오직 자주독립이라는 민족적 여망으로 일어선 3·1만세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들불처럼 번지며 선열들은 일제의 총칼 앞에 맞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했다.

우리나라는 대한 독립 만세를 울부짖으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기 위해 하나가 되었다.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절을 보내며 ‘독립’이라는 따뜻한 봄을 기다렸을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은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었다. 3·1운동은 지역과 계층, 종교와 이념의 구분이 없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민족해방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다. 더 나아가 2천만 민중이 하나 되게 만든 대동단결의 확고한 의지의 표상이었으며, 자유평등과 세계평화를 주창한 인도주의의 힘찬 전진이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외세의 침략이 시작되던 구한말부터 힘없는 백성들이 인내해 온 응어리진 고통과 서러움의 폭발이었다. 비록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독립 의지와 독립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세계독립운동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적 만세운동이었고 무자비한 무력과 탄압 아래서도 평화적이고 비폭력으로 전개된 저항운동이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은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튀르키에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3·1독립운동은 우리나라 국내의 정세 및 외국에 많은 변화를 유발하였다. 1919년 4월 10일 상해에서 각 지역의 독립운동가 대표 29명이 회의를 열어 논의 끝에 나라 이름은 대한민국, 운영체제는 민주 공화정 체제를 갖춘 임시정부를 결성했다. 그동안에 줄곧 논의되었던 내용들이었으며 회의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어 4월 11일 제헌헌법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제정되고 대한민국의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또한 중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3‧1독립운동은 중국 인민 특히 중국 청년들을 고무시켰으며 당시 중국 진보 언론의 열렬한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3‧1운동은 세계적 거사로서 우리 국민들이 어렵게 살면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한 희생정신의 구국 결사였고 시민혁명이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터지자 밀물같은 대한 독립 만세/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이 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다/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3‧1절 노래 가사이다. 3‧1운동에 대한 기념의식이 희미해진 요즘, 3‧1절 노래 가사를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잠시나마 3‧1운동을 기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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