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과하탁교(過河坼橋)
진주성-과하탁교(過河坼橋)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23 16:5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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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과하탁교(過河坼橋)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이해관계없이 발 벗고 나서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 살다 보면 어려움은 같이 하기 쉬우나 즐거움을 같이 하기는 쉽지 않은듯하다.

‘과하탁교(過河坼橋)’라는 말은 다리를 건너고 나서는 그 다리를 부수듯, 힘든 일을 치루고 나서는 도움을 준 사람들을 버린다는 뜻으로 극도의 이기심이나 배은망덕함을 일컫는 말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 좀 더 사람답게 살았으면 한다. 어려울 때만 이용하는 구걸하는 삶이 아니라, 즐거움도 함께 할 수 있는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다가 갔으면 한다.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은 자신의 손자를 위해 수없이 많은 개국 공신들을 잔혹하게 제거했다. 태손이 울며 공신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태손에게 가시나무를 주며 잡아보라고 했다. 가시 때문에 잡기를 망설이자 "가시가 있으면 손을 다친다. 나는 가시들을 없앤 후 네게 보위를 물려 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과하탁교(過河坼橋)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대표는 한 고조 유방일 듯하다. 유방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마침내 항우를 제압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다. 그리고 왕조가 안정권에 접어들자 천하의 명장인 초왕 한신, 양왕 팽월, 회남왕 경포 등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핵심 공신들을 대부분 죽였다. 나라를 세운 뒤 유방의 밑에서 활약한 사람들 중 무사했던 사람은 장량과 소하 밖에 없었다. 장량은 통일의 위업을 닦아 놓은 뒤 권력을 떠나 은거했고, 소하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낙향했다.

혁명에는 1인자 만이 남는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움은 함께해도 즐거움은 함께 할 수가 없는가 보다. 무슨 일을 할 때는 의기투합하다가, 일이 잘되고 나면 이득을 독차지 하려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함께했던 소중한 인연들을 소홀히 배신한다면, 깊이 간직해야 할 의리가 원한으로 바뀌는 것이다.

요즘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선거 때만 되면 간이라도 내어줄 듯 애걸복걸하던 사람이 당선만 되면 언제 보았느냐는 듯 안하무인이 되어 목에 힘주고 거들먹거리는 인사도 있으니 과하탁교인 셈이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핵심 참모들도 고마운 줄 모르고 토사구팽 한다면 등을 돌리게 되고, 주변에 사람이 떠나면 그 권력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고, 순간에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매사 겸손해야 할 일이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정치를 묻자 “권력과 힘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면 모두가 떠날 것이니 덕(德)으로 다스리라.”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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