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 3.1운동은 3월 10일 시작
진주성-진주 3.1운동은 3월 10일 시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01 15:0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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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3.1운동은 3월 10일 시작

진주 3.1운동 시작점은 3월 18일이라고 주장함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수천 군중이 진주교회 종소리를 듣고 시내 5곳 이상에서 대한(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한 것은 사실이다. 3월 18일 낮 12시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시위를 전개한 것은 맞지만 시작한 날은 3월 18일이 아니다.

고종 황제께서 붕어(별세)하신 소식이 진주지역 청소년들에게 전달되자 상경하기로 작정하고 진주시 집현면 하촌리 김재화 선생의 자택에 모여 상경 준비를 하고 5백리 길을 도보로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종로에서 기독교, 대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서울 시위에 동참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구입해 진주에 당도했다. 김재화, 박진환, 박대업, 정준교, 심두섭, 강달영 등이 상경팀이었다. 중도에 충청도를 지날 때 시위하는 군중을 발견하고 청년 걸음으로 걸음을 재촉하니 3월 7일경 진주에 도착했다. 이들은 교유문 작성, 태극기 제작, 독립선언서 제작을 하고 교회와 각 사회 단체들과 연계한 투쟁을 위하여 3월 13일 시위 날자를 정하고 시위 준비를 하게 되었다.

독립선언서는 망경동 언덕에서 정준교 등이 약 2천여 장을 등사하고 태극기는 순사 출신 정용길이 자택에서 제작했다. 기독교계 광림학교 졸업생 이영규, 천명옥, 김영조, 박성오 등이 악기를 준비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뜻밖에 3월 10일 새벽에 진주 시내 사방 곳곳에 격문이 나붙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경들은 초 비상령이 하달되어 범인 검거에 나섰으나 결국 잡지 못하고 각급 학교에 지시를 내려 휴교령을 하달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신속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하고 차비가 없는 학생들에게 차비를 지급해 빨리 고향집으로 가도록 했다. 격문을 작성하고 붙이는 세력이 있었고 이를 본 일경들이 비상사태라고 하면서 엄중 경계하고 있었으니 실직적인 진주 시위는 3월 10일이라고 볼 수 있다.

3월 13일 진주 장날 진주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5곳 이상에서 시위하기로 했던 계획을 연기한 이유는 순사 출신 정용길 등이 경계가 엄중하니 3월 13일보다 3월 18일에 총집결함이 좋겠다고 말하자 그대로 따라가게 되었다. 3월 10일 새벽에 광림학교 학생들이 격문을 짓고 붙인 것으로 본다. 그 당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 10% 미만이라는 통계를 보면 배운 학생들이 선도한 것이 확실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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