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죽음의 환상에서 깨어나라
아침을 열며-죽음의 환상에서 깨어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16 14:3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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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죽음의 환상에서 깨어나라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깨달음이다. 하루하루 보내기가 만만찮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두 번째, 만사가 무상하다는 진리, 즉 변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수시로 변하며 나타나는 모습과 현상이 놀랍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하며 늘 잊어서는 안 되는 명제, 즉 내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없다. 대아로서의 나는 시간과 공간이 주인이며 나는 그저 창조의 주체일 뿐이다. 이로써 삶은 문제와 답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스스로 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줄기차게 달리는 길, 그것이 바로 인생의 길이요, 어른의 길이며 홍익인간의 길이다. 삶의 본질에 대하여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이다. 이 물음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종교는 아주 잘 먹고 잘 입고 있다.

하지만 종교는 서서히 그 세력이 줄어갈 것이다. 왜냐면 위 세 가지를 깨달아 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항간에 어떤 스님에게 누군가가 그렇게 물으니 살아가는 것도 지금 모르겠는데 죽은 후에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고 되묻자 좌중은 모두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씀인데 질문자는 도리어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탄생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지만 죽음이 언제 어디서 올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그때를 맞이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즉 죽음은 인간의 선택 밖에 있는 사실일 뿐이다. 젊고 힘이 좋을 땐 내 삶이 언제나 영원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육체의 삶은 유한한 경험임을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연의 섭리가 그냥 두지 않는다.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금, 은, 보화로 치장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 질량 불변의 법칙을 잘 알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형태가 바뀌고 질료가 변해도 전체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억5천만 년 전의 그 많던 공룡들은 사라졌고 그 에너지는 다른 동물에게 또는 사람에게 식물에 전달되었다.

양자역학으로 말하자면 원자, 즉 소재만 이리저리 전달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탄생하는 순간에 삶이 시작되고 죽는 순간에 생명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이 뭐 별거냐고 한탄을 한다. 그런 생각이 삶을 허망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이 30센티 줄자처럼 되어있다고 여긴다. 육체적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면 무척 논리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큰 착각이다. 육체의 시작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시작이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버지, 또한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없었던들 지금 내가 있을 수가 있는가?

생명의 시작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시점이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이어가고 있다. 무척 거룩한 명제이다. 그래서인지 생일이면 축하해주고 노래를 불러준다. 반대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잘못된 환상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차갑고 슬프며 아프고 어둡고 무거운 것만 연관해 생각한다. 이러한 느낌은 현상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죽으면 어둡고 무거운 관속에 들어가 뜨거운 화구 속으로 들어가거나 차가운 땅속으로 파묻힌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가만히 어떤 주검을 바라보면 가히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육체는 단지 영혼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영혼을 감싼 껍질 같다고 생각하면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죽음을 미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사는 켜졌다 꺼졌다 하는 전구와 같다. 불이 꺼졌다고 해서 전기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불이 꺼져도 전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존재한다. 연결 코드만 끊어진 것이다.

우리를 감싸는 큰 생명 에너지와 분리된 생사가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생사에 관한 우리의 인식은 고정관념이요, 그저 환상일 뿐이다. 생명 에너지는 무한하게 흘러가는데 그 에너지가 나름대로 정해진 시점에서 뭉쳤다가 흩어지는 경계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생사라는 현상이다. 에너지가 뭉치는 것이 생이요, 흩어지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정신의 에너지가 육체적 에너지와 만나는 것이 생이요, 분리되면 사인 것이다.

학교를 입학하면 졸업을 하는 시기가 오듯이 우리의 생사도 마찬가지이다. 입학할 때 꽃다발로 축하를 하면 졸업식 때도 축하를 해주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가장 큰 축복의 날이 될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당신의 고정관념을 바꾸어라. 그리고 현실에 그저 충실하고 즐거이 지내라. 그것이 생사관을 스스로 정립하는 길이며 오늘을 활기차게 보내는 지름길이다. 당당하고 거룩한 죽음은 당신의 영혼을 보다 더 고급에너지로 승화시킬 것이다. 그 뒤는 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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