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K-철학
아침을 열며-K-철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26 10:08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K-철학


"아파 보아야 건강의 가치를 알 수 있고, 늙어 보아야 시간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어느 지인이 SNS에 올린 글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당연히 멋진 말이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날이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라는 저 유명한 공자의 말과 구조적으로 엇비슷하다. 이런 말에는 일단의 진실이 담겨 있다. 철학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종류의 철학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은근히 통용된다. 총체적인 철학 부재의 시대에 그나마 이런 식으로라도 철학적인 언어가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닌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단편적-직관적 지혜에서 ‘K-철학’의 한 가능성을 찾는다.

눈여겨보면 주변에 이런 식의 언어들이 의외로 많다. 소위 ‘K-pop’의 가사나 한류드라마의 대사에도 제법 많다. BTS가 부른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도 보면 “...널 알게 된 이후 내 삶은 온통 너/ 사소한 게 사소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너라는 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특별하지/ 너의 관심사 걸음걸이 말투와/ 사소한 작은 습관들까지/ 다 말하지 너무 작던 내가 영웅이 된 거라고/ 난 말하지 운명 따윈 처음부터 내 게 아니었다고/ 세계의 평화/ 거대한 질서/ 그저 널 지킬 거야 난...”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한 엄연한 철학이다. ‘사소한 게 사소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너라는 별’ 특히 이런 말은 일종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거대서사’ 이후의 광경이다. 이런 방향이 우리에게 ‘삶의 길’을 열어준다. ‘너라는 별’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영웅’이 되는 것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라고, 젊은 아이들의 노래라고, 이게 철학이 아닌 건 아니다. 삶의 자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엄연한 철학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호응한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유명한 최희준의 옛 노래 ‘하숙생’도 인생의 본질을 건드린다는 점에서는 역시 철학이다. 주변을 뒤져보면 이런 식의 철학적 의미를 담은 언어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진정한 언어는,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어디선가 그것을 들어주는 귀를 만나게 된다.” “가족이란, 나 아닌 나, 나보다 더 나, 그런 존재다.” “사랑의 본질은 ‘because of’가 아니라 ‘in spite of’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명성은 모래 위에 쓰인다. 아주 드문 이름들만이 바위 위에 새겨져 저 역사의 풍화를 견디어낸다.” “모든 발걸음에는 방향이 있다. 그리고 발자국을 남긴다. 그 방향과 발자국이 그 주인의 정체를 알려준다.” ... 무수히 많다.

신문기사의 댓글들에서도 ‘철학급’의 발언들이 적지 않다. 그런 것을 찾아서, 모아서, 이제 ‘K-철학’으로 실체화해보는 건 어떨까. 종류와 형식은 좀 다르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저 독일인 못지않게 철학을 사랑하는 민족인 것 같다. 굳이 저 칸트나 헤겔처럼 거대한 체계를 이룰 필요도 없다. 그런 건 이제 사람들에게 별 인기가 없다. 짧은 한마디라도 그게 나에게 지키고 싶은 ‘별’이면 된다. 단편의 힘이라는 것도 분명히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 공자의 <논어>다. 그 언어들은 한결같이 문맥이 사라진 단편이지만 엄청난 위력을 갖는다. 그런 힘 있는 언어들로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려야 한다. K-철학이 참고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이런 K-철학이 책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것은 헛된 꿈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저 K-pop이나 한류드라마라는 그릇이 있지 않은가. 거기에 담아 멋진 플레이팅을 하면 된다. BTS가 쉬는 동안 그런 구상을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 철학은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