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나는 나 너는 너
진주성-나는 나 너는 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28 16:2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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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나는 나 너는 너

아들 식구와 딸 식구가 간밤에 들이닥쳤다. 언제 자기들끼리 약속했는지 벚꽃 구경을 나서려고 아침이 부산하다. 무언가를 도와야겠다 싶어 고무장갑을 단단하게 끼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버님 저 할건데요”하고 며느리가 후다닥 달려오길래 “내 밥자리 뺏지 마라”했더니 식구들이 웃는다. “벌써부터 어머님이 아버님 구박하시는 거예요?” “벌써부터라니 그럼 언젠가는 나도 구박을 당할 거란 말인가?” 절묘한 기회를 포착한 집사람이 “당신은 뭐 특별한 사람이유?”하고 대못을 쾅! 미리 박았다. “남자들은 잘 들어. 저게 여자들 본심이다.” 했더니 사위가 제일 먼저 “옙!”한다. “그런데 엄마들은 사위가 설거지하는 것은 좋아하면서 아들이 하는 꼴은 또 못 본다” 듣던 소리를 했는데 “다 생존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고 아들이 보탠다.

꾸물댄다고 투덜거리던 나도 늦게야 철이 들었는지 설거지를 간간이 한다. 어디 나서려면 여자들은 준비할 것이 여간 많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다. 며느리도 열 살배기 손녀의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다가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어서 준비들이나 해”하고 물을 세게 틀었더니 쏴-아 소리를 낸다. “물을 조금 줄여요. 옷 다 버려요”하는 집사람의 소리에 아차! 했다. 옷 젖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가뭄이 심해서 식수마저 제한 급수를 한다더라” “그러게. 남이야 어떻든 내 편하면 그뿐인 세상인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한쪽에서는 죽느냐 사느냐 바동거리는데 다른 한쪽에서 하하하 호호호 하며 재미가 좋아서 죽겠다는 것을 보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집사람의 지론이다. “사람이 다 그런 거야. 상가에 조문 가서 슬픈 척하고 코 한번 훌쩍거리고 돌아서면 그뿐이야.”

하잘것없는 생활 속의 대화지만 ‘나는 나 너는 너’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앞에서 아프리카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한겨울에도 집안에서 반 팔 옷 입고 설치면서 노숙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나 너는 너’인 세상이다. 현관을 마주 보는 앞집에 젊은 여자가 이사를 오고 며칠 뒤인 아침에, 우리 부부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 마주쳤다. “이웃이 되어서 반가워요”하고 집사람이 먼저 인사말을 걸었다. “예, 서로 관심 갖지 말고 지냅시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날 우리 부부는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느린 줄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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