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이판사판(理判事判)
진주성-이판사판(理判事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02 14:4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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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이판사판(理判事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다. 이판사판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자포자기 심정, 또는 막다른 곳에 봉착한 현실에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 사생결단을 낸다는 의미로 쓴다. 막바지 궁지에 몰렸을 때 ‘끝장’을 의미하는 말로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에 사용되는 용어다. 한마디로 '너죽고 나살자'라는 심정으로 막판에 안간힘을 다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불교 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자 불교용어로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을 함께 묶어 사용한 말인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은 건국 이념으로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표방했다. 이것은 고려의 지배 세력이 불교를 숭상했기 때문에 불교를 탄압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불교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하루 아침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왕조의 불교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사찰의 승려들은 천민계급으로 전락하면서 불교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불교가 말살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사찰을 지키면서 불법(佛法)을 전수하는 것이 승려들의 임무이자 숙명이었다. 이 때문에 승려 가운데 일부는 기름이나 종이, 신발 등을 만드는 잡다한 일을 하면서 절이 없어지는 것을 막는 데 헌신했다. 이러한 일을 한 스님들이 사판승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산 속으로 숨어들어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잇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인 승려도 있는데 이들을 이판승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불교가 그 맥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이판승과 사판승들이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판사판의 의미가 잘못 전하여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승려는 최하계층의 신분으로 전락하면서 도성 출입마저 금지되었다고 한다. 당시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마지막 선택이었을 것이고 이를 두고 이판승이나 사판승이나 모두 끝장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이다.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서로가 갈라져 이판사판식 대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라도 이판과 사판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 각자 자기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화합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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