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친구야!
진주성-친구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04 15:5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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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친구야!

친구야! 오늘 날씨 너무 좋다. 젊은이들은 꽃구경 가고 우리는 오일장에나 가자. 안 팔 듯이 하다가 덤까지 얹어주는 그 마음도 그렇고, 안 살 듯이 하다가도 지갑 여는 그 마음도 고맙고 예쁘잖아. 친구야! 우리는 국밥에다 인정 말아 맛있게 나눠 먹고 사람 냄새 한가득 오지랖에 품고 오자. 친구야! 안 사람한테서 쫓겨나기 전에 너는 분리수거 봉지 들고 나는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 들고 후다닥 나서자. 꾸물거리면 세월 간다. 내일을 못 믿잖아.

친구야! 그 많던 친구들도 하나둘 안 뵈더니 흔적조차 없잖아. 많은 줄 모르고 모으고 아껴뒀던 적잖은 그 돈도 쓸데가 없잖니. 먹는 양도 줄었고 입는 품도 줄었잖아. 친구야! 네 아들은 나라에 주고 내 아들은 사돈네 주고 네 딸 내 딸 사위에게 도둑맞고 우리는 빈털터리잖아. 친구야! 개 키우는 딸 집에는 가지 말고 손주 뛰노는 며느리 집에 가자. 내 딸은 오면 보고 사돈 딸은 가서 보자.

친구야! 너랑 나랑 연애편지 내용도 같았잖아. 작문은 내가 하고 글씨는 네가 써서 제각각 주었잖아. 친구야! 너는 전지전능하시다며 아무것도 안 해줘도 주일마다 찾아가고, 나는 대자대비하시다며 아무것도 안 주셔도 초하루 보름이면 기어이 가잖아. 너나 내나 그만 오라 할 때까지 그래도 갈 거잖아.

친구야! 너는 술 한 병 사고 나는 과일 하나 사서 서비 선생님 찾아서 고성 학동 가자. 동쪽에는 ‘왜’가 있으니 사립문도 서쪽으로 내라며 아호도 ‘서비’라 고치셨고 일본 천황이 준다는 그 많은 은사금도 어찌하면 안 받을까 노심초사 하시다가 받지 않으면 못 배길 지경에 이르자 자결을 하셨는데 지금 심기가 편찮으실 것이다. 회초리도 하나 꺾어 서둘러 어서 가자. 친구야! 바다 건너 저 양반을 철석같이 믿지마는 막가는 저 인간을 무슨 수로 감당하나 너랑 나랑 머리 맞대서 핵무기 만들자.

친구야! 너는 여당 하고 나는 야당 해도 너와 나는 서로가 마주 보고 언제나 웃잖아. 용산이나 여의도나 예삿일이 아니다. 남명 선생 찾아뵙고 ‘단성소’ 다시 읽고 매천 선생 찾아가서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치자. 친구야! 온갖 채널의 떠버리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든지 말든지 “섭천 소가 웃겠네” 하고 우리는 거울이나 열심히 닦자. 오늘 날씨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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