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최대성 장군 유적지 문화재 신청
진주성-최대성 장군 유적지 문화재 신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05 17:3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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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최대성 장군 유적지 문화재 신청


4월 18일은 유네스코가 1982년부터 세계문화유적 및 기념물의 날로 정한 날이다. 최대성(崔大晟)(1553~1598년) 장군은 경주 최씨로 고려 대사성 문정공 최해(崔瀣)의 직계손으로 명종 8년 계축년에 출생했고 16세 때 어머님이 병으로 고생하자 자신의 피를 주혈해 살린 효자이다.
최대성 장군은 32세에 무과에 급제해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참전했으므로 모의장(募義將)칭호가 붙여지고 훈련원 정 벼슬이 제수되었다.

1595년 5월 보성에서 종사관 유공진, 군관 이충일, 모의장 최대성 등이 이순신 장군을 뵈었다는 사실이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기재되었다. 계속해서 거제, 한산, 마산, 웅포 해전에 참전했으며 1598년 웅치전투에서 적군 백여 명을 베었지만 적의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고 아들 2명(최언립,최후립)도 전사해 ‘선무공신록’에 등재된 만고의 충신이다. 최장군은 ‘조선왕조실록’, ‘호남절의록’, ‘영남인물고’, ‘조선환여승람’등에도 기재된 충신이다.

160년이 지나 각 지역 선비들의 탄원서에 의해 비로소 통정대부 형조참의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추증되어 1752년(영조 임신년)에 정려와 현판이 명하여지자 진주시 미천면에 정려가 세워지고 검남재가 완성되었다. 광복 후 진주시 안간파출소 옆에 제단비가 건립되었다. 경남도 문화재 신청은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 추경화 실장이 3년 5개월간 자료 수집과 연구에 의해 실시되었고 후손 최형준, 최인수, 최재영(도청)등이 유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탄원한다. 최대성 장군은 조선의 사직 보존을 위하다 순국했지만 시호를 받지 못하고 형조참의 어모장군에 추증되었으나 그분을 모신 재각, 현판, 비석이 지금까지 문화재 지정이 되지 못한 것은 통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서부 경남에는 경남도 문화재 위원 30여 명 중 한 명도 없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것이다. 전국 중앙문화재 위원 99명 중 서부경남에는 20여 년간 단 한 명도 위촉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분명하다. 왜 경남과 서부경남에는 경남도 문화재 위원, 전국 문화재 위원이 20년간 한 명도 없느냐 문의하자 바르게 처결한다는 대답이었다. 대구와 경북 지역 문화재 숫자와 진주와 경남 문화재 숫자가 2~3배 차이가 나는 이유가 경북, 대구지역 인사와 출신들이 위원을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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