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최대성 장군 유적지 문화재 신청
4월 18일은 유네스코가 1982년부터 세계문화유적 및 기념물의 날로 정한 날이다. 최대성(崔大晟)(1553~1598년) 장군은 경주 최씨로 고려 대사성 문정공 최해(崔瀣)의 직계손으로 명종 8년 계축년에 출생했고 16세 때 어머님이 병으로 고생하자 자신의 피를 주혈해 살린 효자이다.
최대성 장군은 32세에 무과에 급제해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참전했으므로 모의장(募義將)칭호가 붙여지고 훈련원 정 벼슬이 제수되었다.
160년이 지나 각 지역 선비들의 탄원서에 의해 비로소 통정대부 형조참의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추증되어 1752년(영조 임신년)에 정려와 현판이 명하여지자 진주시 미천면에 정려가 세워지고 검남재가 완성되었다. 광복 후 진주시 안간파출소 옆에 제단비가 건립되었다. 경남도 문화재 신청은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 추경화 실장이 3년 5개월간 자료 수집과 연구에 의해 실시되었고 후손 최형준, 최인수, 최재영(도청)등이 유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탄원한다. 최대성 장군은 조선의 사직 보존을 위하다 순국했지만 시호를 받지 못하고 형조참의 어모장군에 추증되었으나 그분을 모신 재각, 현판, 비석이 지금까지 문화재 지정이 되지 못한 것은 통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서부 경남에는 경남도 문화재 위원 30여 명 중 한 명도 없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것이다. 전국 중앙문화재 위원 99명 중 서부경남에는 20여 년간 단 한 명도 위촉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분명하다. 왜 경남과 서부경남에는 경남도 문화재 위원, 전국 문화재 위원이 20년간 한 명도 없느냐 문의하자 바르게 처결한다는 대답이었다. 대구와 경북 지역 문화재 숫자와 진주와 경남 문화재 숫자가 2~3배 차이가 나는 이유가 경북, 대구지역 인사와 출신들이 위원을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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