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제로섬 게임
도민칼럼-제로섬 게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11 09: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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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제로섬 게임

상생(相生)이라는 말이 있다.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더 제로섬이 되어간다. 한 사람이 가지면 다른 한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세상, 플러스 10이 있으면 마이너스 10이 있어 ‘0(Zero)’이 되어버리는 세상, 자연마저도 유한하지 않으니 당연한 지도 모른다. 

물과 공기는 항상 존재한다고 믿었는데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마저 사라져 가지 않는가! 더워서 에어컨을 켜면 실외로는 뜨거운 공기가 나가는 것처럼 무언가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주거나 잃어야 한다. 세상사 여지없다.


10을 골고루 나눠서 가지는 세상은 이상향일 뿐, 인간의 욕망은 최대한 10을 혼자 차지하는 것이어서 그 절정을 반영한 세상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지금 세상이 옳은가? 우리는 고민할 사이 없이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 본성이 악하지 않은 사람들은 최대한 10을 갖되 내가 중심이 되어 나눠주려고 한다. 혹은 그 10을 포기하기도 한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후자이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 하나를 들라면 포기가 빠른 것이다. 되지 않을 것에 목매달지 않는다. 열정으로만 되는 세상이 아니란 것을 세월이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그러나 젊은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 도전하고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서고 그 과정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그런데 요즘은 몸 고생보다 마음고생들이 더 많은 세상인가 보다. 다 같이 어려운 시대를 지나 누구는 토대가 탄탄한 곳에서 시작하고 누구는 맨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니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일반명사가 되어버렸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으니 어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디딤돌 하나라도 딛고 서보려고 애쓰는데 제로섬 세상에서는 얻으려면 빼앗아야 하니 흙수저가 흙수저의 등을 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보이스피싱은 날로 그 수법이 고도화되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서울의 전세사기,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하는 작업대출사기, 청소년들까지 꼬드겨 저지르는 휴대폰깡사기, 캐피탈을 이용한 차량깡사기, 어디서 그런 발상들을 얻었는지 놀라울 정도의 사기수법이 횡횡하다. 그리고 그 사기에 동원되는 사람들,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만 서류상 하자가 없으면 실적을 위해서 대부분 모른 척 한다. 

얼마 전에 아들이 위에 열거한 사례들로 사기를 당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당한 놈이 바보라고 인식한다. 자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기나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을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는 사기나 기망을 구성하는 요건들은 까다로운데 반해서 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측면이 있다. 그러니 이 제로섬 게임에서는 빼앗는 것이 늘 정당하게 된다. 작은 도둑놈은 절도범이지만 큰 도둑놈은 나랏님이 되고 재벌이 되는 세상이라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일찍부터 포기를 가르쳐야 하나?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 홀로라도 공정하라고 해야 하나? 어른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그저 ‘사람을 믿지 마라’이다. 제로섬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히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같은 일을 당한 아들의 후배가 ‘무섭다’고 말하며 우는데 이래서 젊은 아이들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든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그 아이에게 희망을 말하며 안심시킨다. 

우리가 그동안 경쟁으로 내 몬 아이들은 살고 싶어서 소확행을 꿈꾸고 현재의 삶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욜로(YOLO)를 말한다. 그렇게 숨을 쉬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제로섬에서는 자칫 방심하면 벼랑 끝으로 몰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대안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는 건 사람이므로 사람에게 의지하고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서로 북돋는 일이다. 대안은 결국 ‘상생(相生)’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그러니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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