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상해 임시정부 수립기념일 4.11국내와 간도 등에서 거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 자주독립을 선언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때 국내에 4개 처, 국외에 2개 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박영효, 손병희 선생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의회정부, 박동휘, 이승만을 중심으로 신한민국 정부 등이 있었다. 결국 상해 임시정부가 정통이 되었다.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겸 내무총장 이승만,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영, 외무총장 이규식,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신석우 등이다. 각 임시정부는 군주제의 부활이 아닌 민족적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소망했다. 1919년 4월 13일 상해 임시정부는 헌법을 제정하고 내외에 공포하였고 그 후 6개월간 각 임시정부를 통합 흡수하여 1945년 11월 23일 임시정부가 환국할 때까지 27년간 유일한 정통 민족 정부의 맥을 유지하였다.
임시정부 초기에 대한민국 국호로 통일하자는 제안은 신석우(申錫雨·1895~1953) 선생이었고 1925년 귀국하여 4년 6개월간 조선일보 사장으로 큰 공적을 남기고 신간회 총무간사로 경남지역 신간회 지회 설립에 중요역할을 담당하였다. 광복 후 주중대사를 역임했다.
임정은 국내 소식을 듣기 위해 1919년 11월부터 각 시, 군별로 조사원을 임명했다. 임정에 군자금을 제공한 지사는 이교재(창원), 장인환(합천), 정인찬(동래), 최상석(양산), 박덕실(진주), 주남수(거창), 박보교(진주) 등이다. 윤현진(1892~1921)은 대동청년당에 가입해 임시정부 의정원 겸 재무차장이었고 백산상회에서 30만원을 받아 임정에 전달했다. 김갑(1889~1933)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겸 국무원 차장, 부장이 되었다. 김홍권(1892~1937)은 국채보상운동을 했고 대동청년당에 가입했고 상해 임시의정원 의원을 두 차례 역임했다.
손일민(1884~1940)은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하고 1937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문시환(1898~1973)은 의열단 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의정원 의원이 되었고 광복 후 경남도지사와 제헌의원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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