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상해 임시정부 수립기념일 4.11
진주성-상해 임시정부 수립기념일 4.1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12 16: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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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상해 임시정부 수립기념일 4.11

국내와 간도 등에서 거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 자주독립을 선언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때 국내에 4개 처, 국외에 2개 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박영효, 손병희 선생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의회정부, 박동휘, 이승만을 중심으로 신한민국 정부 등이 있었다. 결국 상해 임시정부가 정통이 되었다.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겸 내무총장 이승만,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영, 외무총장 이규식,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신석우 등이다. 각 임시정부는 군주제의 부활이 아닌 민족적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소망했다. 1919년 4월 13일 상해 임시정부는 헌법을 제정하고 내외에 공포하였고 그 후 6개월간 각 임시정부를 통합 흡수하여 1945년 11월 23일 임시정부가 환국할 때까지 27년간 유일한 정통 민족 정부의 맥을 유지하였다.

경남 출신으로 국회에 해당되는 임시정부 초대 의원으로 유경환(산청), 김대지(밀양), 이한근(산청), 윤현진(양산), 김갑(동래), 김홍권(진주) 6명을 찾았다. 1921년부터 1940년대까지 의정원 의장이었던 사람은 이규홍(양산), 문시환(부산), 이장희(부산), 장건상(부산), 손일문(밀양) 정도만 알려져 있다. 정부 포상이 추서되지 못한 분은 이한근, 이규홍 이다.

임시정부 초기에 대한민국 국호로 통일하자는 제안은 신석우(申錫雨·1895~1953) 선생이었고 1925년 귀국하여 4년 6개월간 조선일보 사장으로 큰 공적을 남기고 신간회 총무간사로 경남지역 신간회 지회 설립에 중요역할을 담당하였다. 광복 후 주중대사를 역임했다.

임정은 국내 소식을 듣기 위해 1919년 11월부터 각 시, 군별로 조사원을 임명했다. 임정에 군자금을 제공한 지사는 이교재(창원), 장인환(합천), 정인찬(동래), 최상석(양산), 박덕실(진주), 주남수(거창), 박보교(진주) 등이다. 윤현진(1892~1921)은 대동청년당에 가입해 임시정부 의정원 겸 재무차장이었고 백산상회에서 30만원을 받아 임정에 전달했다. 김갑(1889~1933)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겸 국무원 차장, 부장이 되었다. 김홍권(1892~1937)은 국채보상운동을 했고 대동청년당에 가입했고 상해 임시의정원 의원을 두 차례 역임했다.

손일민(1884~1940)은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하고 1937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문시환(1898~1973)은 의열단 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의정원 의원이 되었고 광복 후 경남도지사와 제헌의원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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