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아기를 업은 새댁
진주성-아기를 업은 새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18 16: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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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아기를 업은 새댁

아기를 업은 새댁이 쪽지가 붙은 전신주 앞에 섰다. 매일 다니는 길이라 내게는 눈에 익은 쪽지다. 새댁은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그 쪽지광고를 읽고 있다. 친정엄마들은 안 보아도 시집간 딸자식의 기미를 안다. “뭔 일 있어?”하는 친정엄마의 전화에 “아니, 아무 일 없어”하고, 남편을 일자리로 보내고 서둘러 아기를 둘러업고 작정하고 나선 것이 틀림없다. 엄마 앞에서는 더 크게 울던 그 딸이 커서 엄마가 되고부터 답을 그렇게 한다.

‘셋방 있음’이라는 굵은 글씨 밑에는 촘촘히 내용이 적혀있고 아래쪽은 오징어 발처럼 여러 가닥으로 갈라서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다. 흔해 빠진 게 원룸인데 무슨 사연일까. 보증금과 월세를 머릿속의 통장에다 찍어보는 모양이다. 육아용품도 별별 게 다 나와서 포대기가 없어진 지도 오래인데 새댁은 포대기로 아기를 업었다. 포대기 끈을 허리에 한 번 두르고 대각선으로 어깨를 걸쳐 매었는데 어찌도 야무지게 업었는지 차림새만 보아도 손끝이 야무진 새댁임이 짐작된다. 뒷모습이 애틋하여 멀찍이서 딴청을 부리며 한참을 지켜봤다. 기장은 짧아져도 골이 촘촘한 누비포대기다. 분명 친정엄마가, 우리 딸이 아기 가졌다고 좋아서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날 듯이 기뻐서 뛸 듯이 달려가 미리 사 두었던 그 포대기가 분명 맞다. 그래서 친정엄마의 냄새가 솔솔 난다.

지금, 친정엄마의 그 딸이 신접살이의 셋방을 비워줘야 하기에 또 어딘가의 셋방을 구하려고 아기를 업고 골목골목을 헤매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남의 집 셋방살이라도 비둘기 같은 신혼부부가 꼬물거리는 아기를 낳아 머리를 맞대고 내려다보며 세상을 다 얻은 듯이 행복했었는데, 방을 옮겨야 할 까닭은 모르지만, 골목길의 바람은 아기에게는 아직도 차갑다.

오래전 딸이 시집가던 날 요객으로 갔을 때의 일이지만 “길도 먼데 이제 아버님 어머님은 가시게 새아기가 아버님께 술 한잔 올려라.”하는 안사돈의 말에, 딸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고 연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천장만 쳐다보던 그 날의 눈물이 쭈르르 흘러내린다. 저 쪽지가 이제는 마지막 구하는 셋방이 되었으면 하고 가슴이 미어진다. 까치집 같아도 좋으니 내 집 한 칸 마련하여 비둘기 같이 살아주었으면 하고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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