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중에 알게 된 은행나무의 은혜!(2)
기고-나중에 알게 된 은행나무의 은혜!(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20 16:1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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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소/함양군 독림가(篤林家)
박동소/함양군 독림가(篤林家)-나중에 알게 된 은행나무의 은혜!(2)

한편으로 가중되는 묘목 구입비를 줄이기 위해 현지 농장 양묘를 통해 묘목을 충당해 갔다. 이맘때쯤 은행 열매가 돈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금조달을 위해 소득이 빠른 밤나무 10.0ha를 은행나무 사이사이에 혼식하고 잣나무 6.0ha를 농장 바깥쪽으로 함께 심었다. 초창기 어린나무가 잡초를 이길 때까지 풀베기와 덩굴류 제거 작업은 과히 전쟁이었다.

시기를 놓치기라도 하면 어린나무가 잡초와 덩굴류에 묻혀버려 찾을 수가 없어 그만큼 작업 진행이 더뎌진다. 특히 예취기를 매일 메고 있어야 하는 일과는 순간적인 안전사고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도 오래 방치된 산림이 은행나무 농장으로 한발 한발 바뀌어 가는 것을 볼 때마다 힘을 낼 수 있었다.

주거지의 보호를 받는 나도 힘든 600고지 환경을 견디는 어린나무의 생명력은 나에게 늘 용기를 주었다. 자연 생태계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었고, 얼른 보기에 제각각 본능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보다 매우 이성적이다. 함께 살 수 있는 주고받는 삶의 지혜가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 산을 거처 가는 등산객이 따 먹으라고 임도 양쪽에 다래나무를 심은 것도 내가 오랜 세월 배운 생태계의 가르침이었다.

밤이 되면 이름 모를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부스럭대는 소리들은 적응될 때까지 늘 잠을 설치게 하였고 나에겐 공포였다. 그때마다 2마리의 강아지는 나에겐 가족 이상이었고, 농장을 찾는 사람들마다 방명록의 서명은 왠지 필요한 일이다 싶었다. 처음 은행 열매 100㎏ 생산을 시작으로 2년 후엔 생산량이 급증하여 1,000㎏이 생산되었고, 매년 급격히 증수가 예상된다. 은행 열매 수확에 필요한 창고 설비를 위한 사업계획을 행정부서에 제출해 놓고, 박피기 구입을 위해 중국도 다녀왔다.

30여 년의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기어코 오래도록 방치된 불모지 임야 33만여㎡가 노란 단풍으로 물든 은행나무 농장으로 바꿀 수가 있었다. 멋진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지금도 농장 사진을 지니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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