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3·1만세운동 재현행사에 다함께 참여하자
진주 3·1만세운동 재현행사에 다함께 참여하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3.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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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옥/진주문화사랑모임 사무국장

매년 3월 18일이면 진주청소년수련관 강당과 광장에서는 진주의 3·1만세운동과 걸인·기생독립단 횃불시위 재현행사가 열리고 있다. 행사에서는 일반 시민은 물론 기생과 걸인복장을 하고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3월18일 오후 걸인·기생독립단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될 것이다.

진주의 3·1만세운동은 전국에서도 서울 다음으로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펼쳐진 것으로 부산·경남 3·1운동사에서는 ‘3월 18일 오후 4시경 1만명이 시위를 하여 석양에 약 300명이 검거되고 7시경 노동독립단, 9시경 걸인독립단이 참가하고 다음날 시위때는 기생독립단도 참가하였는데 기생 6명과 학생 등 100여명이 체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느 어르신께서는 “3·1독립운동은 진주가  전국에서도 제일 활발하게 만세운동을 펼쳤는데 왜 걸인과 기생만 우상화하느냐”고 문의해 오시기도 하였는데 물론 맞는 말씀이시다. 진주는 예로부터 호국충절의 고장이다. 나라가 어려울때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불타는 호국정신이 이어져오고 있는 고장임에 틀림없다. 일제시대의 모진 억압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온 백성이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치며 일어났던 1919년 3월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애국시민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걸인·기생독립단 만세 횃불시위 재현행사는 바로 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다시말해서 전국의 지역마다 일반백성들의 만세운동은 있었지만 진주는 일반시민은 물론 당시 천한 신분인 걸인과 기생들도 만세운동에 적극 나섰으니 단연 전국에서 진주가 만세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임을 부각시키고 한편으로는 당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신분인 걸인과 기생들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겁내지 않고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는데 그 고귀한 정신을 이시대의 사람들 특히 젊은층과 학생들이 이어받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진주시사와 내고장전통에 보면 기미년 3월 18일 진주의 걸인 100여명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의분에 넘친 목소리로 “우리들이 밥을 빌어 먹는 것도 왜놈들이 재산과 인권을 빼앗아간 때문이며 나아가 독립하지 못하면 우리는 물론 2000만의 동포가 모두 빈곤의 구렁에 빠져 거지가 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거리를 누볐고 다음날(3월 19일) 오전에는 진주권번(기생조합) 소속 기생 50여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남강변을 돌아 촉석루까지 행진을 하면서 만세를 불렀고 “우리가 이 자리에서 칼에 맞아 죽어도 나라가 독립되면 여한이 없겠다”고 외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생 김향아 등 5~6명이 경찰에 붙잡혀 옥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는 지난 1996년부터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해 왔으며 2003년부터는 진주지역에서 있었던 독립운동에 대한 학술대회도 열고 있다. 이 학술대회에는 진주 3·1운동 주역들의 활약상, 진주 3·1만세의거와 소년단항일운동, 진주 3·1운동 계승방안 등 다채로운 주제로 토론회를 겸하여 하고 있는데 올해는 ‘진주의 3·1정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렇게 3·1정신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하므로서 국가관이 어느때보다 희박해져 가는 아쉬운 시점에 학생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 호국충절의 고장 진주의 맥을 이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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