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의대’라는 문제
아침을 열며-‘의대’라는 문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24 15: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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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의대’라는 문제

지금 2020년대, 우리 한국의 국력이 세계 6위, 경제력이 세계 10위 운운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그런 숫자들이 과연 우리의 종합적인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어림없다. 아마 국민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내부적인 문제들이 한국 사회의 수준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첩첩이 쌓인 그 문제들 중에 ‘의대’라는 문제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누구나가 이미 다 안다. ‘의사/의대가 부족하다’는 것과 ‘의대 증설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이게 문제가 될 수가 없다. 의사가 부족하다면 의사를 늘려야 하고 늘리면 되는 것이다. 정원을 늘리거나 의대를 증설하면 된다. 역시 누구나가 다 알지만 그것을 원하는 대학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줄을 서 있다. 줄 선 대학들의 역량이 부족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소위 ‘기득권자’인 의사 집단이 기를 쓰고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 위세가 대단한 만큼 해결의 시도는 번번이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반대에는 물론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머리 좋은 그들인 만큼 논리도 탄탄하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하든, 중요한 수술을 위해 몇 달씩 대기를 한다든지 어렵게 예약해 의사를 만나도 그 진료 시간이 기껏해야 5분 정도라는 현실을 감안해 보면, 그 핵심에 의사 부족이라는 현실과 의사 집단의 ‘이기주의’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증원과 증설은 곧 그 지분의 축소를 의미한다. 그것은 전체 이익에 대한 분모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의사라는 이 직종에 대한 과점이 가뜩이나 적은 수험생들의 ‘의대쏠림’ 현상을 야기하고 과학기술을 포함한 기타분야의 인재를 싹쓸이해 간다. 의대 지원을 위한 이른바 ‘반수’도 다반사다. 과학기술의 기반이 흔들린다. 국가 전체의 발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난국이다. 전통적인 인문학의 황폐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이젠 국가 필수산업 분야에서조차 인재난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그 심각성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령화, 복지화에 따라 의사 선호라는 사회적 현상은 아마도 불가피할 것이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노후보장 및 사회적 지위까지 있으니 사정만 된다면 누군들 원치 않겠는가. 게다가 거기에는 아마 ‘고소득’이라는 조건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실력있는 의사가 고소득을 챙겨가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이 모두 허준이나 화타-편작이 아닌 한, 그것을 지탄할 수는 없다. 단, ‘나만’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은 의사 선생님들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의 책임도 크다. 국가 필수산업 분야의 인재들에게는 의사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나은 소득을 정부가 보장해줘야 한다. 가치의 편중은 위험하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의료계 안에서도 인기 분야 비인기분야가 있다고 알려진다. 비인기분야가 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은 의사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방문 치료 같은 분야의 필요성도 점증할 것이다. 그런 데에도 정책적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머리 좋은 관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이를테면 지방대학에 의대를 증설하고 흉부외과, 소아과 등 비인기 중요분야를 키운다면 의료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기득권층과 조화롭게 양립할 길도 분명 있을 것이다. 모 지방 의료원에서 의사를 모집하기 위해 파격적인(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천문학적인) 보수를 제시했음에도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건 이 문제가 단순히 보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려준다. ‘지방’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거기 얽혀 있다. ‘의대쏠림’+‘서울수도권쏠림’이라는 현상이 그 배후에 있다. 그건 이 나라 이 사회의 또 다른 병폐다. 이 역시 그 원천적 해결이 요구된다. 건실한 지방 분권 국가인 독일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하이데거는 베를린대학의 두 차례 초빙을 사양하면서 ‘왜 우리는 지방에 머무는가?’라는 글을 남겼다. 지방에는 지방 나름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인기있는 의대는 모조리 다 지방으로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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