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와대 관광을 다녀와서(2)
기고-청와대 관광을 다녀와서(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03 15:4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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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청와대 관광을 다녀와서(2)

나는 꽤 오래전 일본 관광을 하면서 그들의 천황이 사는 곳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주거지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잘 꾸며져 있고 주변은 그리 넓지 않은 인공호수로 둘러싸여 있었다. 외부인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만든 호수라고 하였다.

일본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로서 일상 정치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외부와 단절해도 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의 역할은 그와는 전혀 다른 데도 청와대가 외부와 너무 단절된 것 같았다.

청와대를 둘러보고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대통령은 예전 왕정 시대의 구중궁궐 속에서 권위와 위엄을 우선시하던 왕과는 다르다. 국정에 직접 나서야 하고, 국민과 소통도 원활해야 하는데 청와대의 위치나 환경은 그런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은 국무위원들이나 주요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왕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또 그들의 의견이 바로 전달되고 허심탄회하게 국정을 논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의 환경도 전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중요한 얘기를 하거나 의논할 때도 그 내용 못지않게 장소와 분위기도 중요함을 가끔 느끼게 된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청와대의 위치나 환경이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을 쉽게 찾아뵙고 속마음을 전달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혹시라도 역대 대통령 중에는 높은 권위 의식으로 국무위원들이나 외국 방문객이 이곳을 들어오면서 그 넓은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곳곳의 경호 인력과 까다로운 출입 절차에 압도되어 엄숙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우월감으로 즐겼는지 모르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그 반대의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청와대의 위치와 환경이 나의 안목으로 이해할 수 없는 더 깊은 뜻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단견으로는 대통령이 청와대 내 가까이 있는 일부 측근들의 의견만 들으면서 민심을 왜곡할 수도 있고, 같은 정파의 정치인들을 불러 비밀리에 정략적인 논의를 하기 좋은 그런 음울한 곳으로 느껴졌다.

나의 생각으로는 웅장한 시설도 무리한 것 같고, 국무위원들과 국정을 논하는 자리로도 아주 불편한 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우리나라 정치가 지금과 같이 맨날 정파 싸움이나 하면서 국민을 불안케 하는 질 낮은 정치를 답습하고 있는 것도 청와대의 위치나 분위기에도 많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보게 되었다. 아무튼 이번 청와대 관광은 즐거움보다 씁쓸함이 많이 남은 그런 관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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