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글 쓰기의 거짓 말 같은 현실
기고-한글 쓰기의 거짓 말 같은 현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07 15: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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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호/시인·수필가
장철호/시인·수필가-한글 쓰기의 거짓 말 같은 현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글로 임명장을 쓸 사람이 없다니 장난이나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중앙지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에 그 기사가 게재된 날이 마침 4월 1일 만우절이다. 그래서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우절 법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하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분명 거짓말은 아니다.

정부의 인사혁신처가 우리나라 사람 중 필경사(筆耕士)를 뽑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으나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 나라의 정신이 담겨 있는 첫 번째가 그 나라 글과 말이다. 그런 글을 쓸 사람을 뽑는데 그 나라 사람 중에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으니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물론 대통령의 임명장을 쓰는 사람으로 선발 기준도 까다롭겠지만 그렇다고 임명장에 한글 30여 자 정도를 붓으로 쓸 사람이 없다니 자랑스러운 글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누굴 원망하고 누구에게 그 탓을 돌려야 될까. 손 글씨를 쓰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디지털화로 손 글씨는 잘 쓰지 않는다. 또한 글씨 쓰기만을 배우는 사람이 차츰 줄어들고, 한글 붓글씨 쓰기만을 가르치는 서예학원이 없다고 하니 필경사가 나오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가장 큰 괴롭힘을 당하고 피해를 보는 것이 우리나라 글과 말이다. 우리나라를 빛내기 위해서는 국어를 잘 다듬고 아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새로 신축하는 대형 아파트는 모두 외계어로 지어진다. 세계 어느 나라도 사용하지 않는 이상한 외국어 합성어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명칭과 각종 상가 간판을 보면 더욱 한탄할 지경이다. 이렇게 업신여기고 푸대접받는 한글을 이제 학자나 언론기관에 맡길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손으로 우리나라 글을 쓰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결국 우리나라의 글을 쓰고 다듬고 아끼지 않으니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가 모국어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 외국에서 물건과 같이 들어온 일부 외국어는 국어보다 더 편리하게 마치 국어처럼 사용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라디오’ ‘버스’ 등은 우리나라 글로 자리를 잡아 버렸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레스토랑’을 ‘고급 음식점’으로 ‘노트’를 ‘공책’으로, ‘뉴스’를 ‘새 소식’이라고 쓰면 오히려 틀린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한글로 쓰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있다고도 한다. 이제라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글과 말을 더 이상 외국어나 외계어에게 빼앗기지 않을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전 세계가 열려 있다. 이와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신종 외국어가 들어와 우리의 정신을 좀먹는다. 어쩔 수 없이 외국어를 사용하려면 한글 학자들의 연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특히 전 국민이 시청하는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에서의 외국어 사용은 학자들의 심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외국어 해석이 어려워 사전을 두고 신문을 봐야 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의 글과 말을 많이 쓰고 많이 읽지 않아 필경사가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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