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진주논개제자타가 공인하는 말 중에 ‘진주는 충절의 도시’라 일컫는다. 인구가 늘어난 지금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430년 전에 한 고장에서 7만의 민·관·군이 순절했다는 것은 아마 세계의 전사에도 보기 드문 일일 것이다.
임진년에 진주대첩을 이루고, 일본은 다음 해 계사년에 패전을 설욕코자 대대적인 군사를 동원하여 진주성을 공략했을 때, 우리 진주 목민들은 최후의 1인까지 왜군과 싸우며 장렬히 전사했다. 성문을 열어주고 항복을 했더라면 모든 백성이 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진주의 목민들은 구차하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모두가 죽음을 선택했다. 사람의 목숨은 그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소중한 것이다. 그 하나뿐인 귀중한 목숨을 7만이 하나같이 조국을 위에 바쳤다는 것이 바로 우리 진주 정신이요 충절의 도시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진주 목민들은 그 위대한 충절을 지속적으로 나라에 표창 상신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1868년 당시 진주 목사 정현석의 건의로 그 공이 인정되고 나라의 지원으로 의암별제가 창제되었다. 당시에는 300명의 기녀들이 3일 동안 악·가·무(樂·歌·舞)를 곁들여 논개와 7만 호국영령들의 원혼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 정신은 4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지금은 진주시의 지원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3일 동안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논개의 제향에는 악·가·무(음악, 노래, 춤)가 포함되고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제례인 의암별제를 서막으로 진주오광대를 비롯한 민속예술과 진주 기생들이 남긴 교방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통문화와 주로 여성을 테마로 한 축제가 이루어진다. 진주성에서 순국한 논개를 비롯한 7만의 충절과 진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진주논개제가 올해에는 5〜8일까지 성황리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우천으로 예전같이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호국영령들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정성은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축제가 만연한 현 시대에 그 어디에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고 진주만이 할 수 있는 진주논개제는 진주 정신과 함께 앞으로 영원히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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