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6)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6)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22 16:1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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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6)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초대 황제 유비(劉備:AD161~AD223·62세·재위AD221~AD223·2년)는 삼국시대 황건(黃巾)의 난 진압에서 공적을 세웠고 그 후 각지를 전전했다. 제갈량(諸葛亮)의 천하삼분지계에 기초해 익주(益州)의 땅을 얻어 세력을 키웠고 후한이 멸망하자 황제로 즉위해 촉한(蜀漢)을 건국하여 초대 황제가 되었다. 그를 일컬어 후세인들은 ‘덕으로 천하를 도모한 유비’·‘맨주먹과 인의(仁義)만으로 일어나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난세의 영웅’·‘가장 미약한 기반으로 시작했으며, 그중에서 살아 있을 때 황제의 자리에 올라 후계자에게 대업을 전한 인물은 유비 하나 뿐이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들에게 “사소한 일이라도 악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도록 하라. 제갈량의 충고에 꼭 따르라.” 제갈량에게는 “내 아들이 무능할 경우 경(卿)이 직접 제위(帝位)에 오르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에서 과연 인의(仁義)가 느껴진다. 감격한 제갈량은 죽을 때까지 신명을 바쳐 충성을 다했다. 군신(君臣) 간의 아름다운 의리를 보여주는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가락국(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仇衡王:생몰년 미상·재위:AD521~AD532·11년)의 무덤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 기슭에 수만 개 돌을 7단(段)으로 쌓아 올린 피라미드처럼 생긴 돌무덤이다. 정상부는 타원형의 봉분으로 된 높이 7m의 거대한 돌무덤이다. 특히 전면 4단 째에 폭과 높이 각 40㎝ 깊이 68㎝ 크기의 감실(龕室:불상·신주 등을 안치시키기 위한 공간) 형태의 시설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용물도 없고 용도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무덤은 가야의 일반적인 묘지와는 다르다. 한국판 피라미드이기도 하다. 구형왕(仇衡王)이라 하기도 하고 양왕(讓王)이라고도 한다. 1971년 2월 9일 대한민국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릉(陵)의 신비로움도 전해오고 있다. 주변의 등나무와 칡넝쿨이 왕릉 방향으로 뻗지 못하고 이끼나 풀은 자라지 않으며, 왕릉 위로는 새들이 날지 않는다고 한다. 이 같은 신비함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형왕릉에서는 매년 춘(음 3월 16일) 추(음 9월 16일)향례와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삭망향례를 올린다. 정확한 사료(史料)의 뒷받침이 부족해 지금까지 왕릉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전설 속의 유적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무덤이 돌무덤이 된 이유는 “죽은 후에 돌로 덮어라”라는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북쪽에서 지금의 중국 베이징 일대까지 정복했다는 기록을 남긴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AD374~412·38세, 재위:AD391년~AD412·21년)은 당시 국왕이었던 소수림왕의 동생인 왕자 이련(伊連: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384년에 큰아버지인 소수림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아버지 고국양왕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며, 386년 1월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391년,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연호는 영락(永樂)이다.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중국과 일본 등지에는 호태왕(好太王)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1880년도에 발견된 광개토왕릉비에는 광개토왕의 활발한 정복 사업이 기록되어 있으며, 평생에 걸쳐 64개 성(城)과 1400촌(村)을 공취(攻取)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에 내 묘지기는 내 친히 돌아다니며 잡아 온 한(韓)인과 예(穢)인들에게만 맡겨서 무덤을 지키고 소제하게 하라”.

아들 장수왕(長壽王:394~491)은 414년에 아버지의 훈적(勳績)을 기록한 능비(陵碑)를 세우고 유언에 따라 수묘인(守墓人)을 두어 왕릉을 관리하게 하였다.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지안시(集安市) 태왕진(太王鎭)에 있는 광개토대왕의 능비이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국강상광개토지호태성왕(國罡上廣開土地好太聖王)·국강상대개토지호태성왕(國罡上大開土地好太聖王) 등의 시호(諡號)가 전해진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는 광개토왕릉비 복제품이 서 있다. ‘역사 지킴이’를 자처하다가 지난 5월 13일에 작고한 진주의 태화건설 대표 오효정(1941~2023·82세)씨는 1996년 중국 여행 중 흉물로 방치된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중국 관료와 접촉해 사비 7억 원을 들여 진입로와 주변 건축물을 정비했다. 오씨는 이런 공로로 대통령표창과 진주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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