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점상의 애환(1)
기고-노점상의 애환(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25 16:4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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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노점상의 애환(1)

내가 노점상을 처음 본 것은 1954년 초등 1학년 때였다. 물론 그때는 노점상이란 이름도 몰랐다. 당시 합천읍 소재지 도로는 모두 비포장도로였다. 길 양옆으로 크고 작은 하수구가 그대로 개방되어 있었고 하수구에는 각 가정에서 흘러나오는 거무충충한 더러운 물이 항상 고여 흐르고 있었다.

매일 하굣길에 보면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읍내 사는 동급생 아버지가 작은 손수레를 끌고 나와 도로 옆 하수구 위에 두꺼운 널판자를 걸쳐놓고 그 위에서 장사를 했다. 반 평 남짓한 좌판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갖가지 과자며 껌, 풍선 등을 펼쳐놓고 있었다. 어떤 과자는 얇은 비닐 포장이 된 것도 있었지만, 일부는 그냥 놓여 있어 조금 불결한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같이 나오던 동급생 친구는 우리에게 보란 듯이 의기양양하게 자기 아버지 손수레 안에 책보를 던져놓고 그 위에 있는 과자를 예사로 집어 먹었다.

나와 마을 친구들은 돈이 없어 과자를 사 먹지도 못하면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요기라도 하려는 듯 잠시 머뭇거리며 쳐다보곤 했다. 과자를 파는 그 아버지와 아들인 동급생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 자갈길 오리를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우리 아버지도 과자 장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제법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그 친구의 가정이 너무 빈곤하여 아버지가 그 장사를 하여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다는 것과 길거리에서 그렇게 파는 것이 노점상인 줄 알았다.

그로부터 15여 년 후, 나는 노점상과 특별한 악연이 맺어졌다. 군에서 제대를 한 다음 해, 지역의 말단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고향인 합천읍사무소에서 25여 년간 토목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당시 읍·면사무소에는 직원 수도 적었고 근무 환경도 열악하여 토목직 공무원 한 사람이 관내 건설 업무 전반을 맡아야 했다.

여름철 수해 예방을 위해 하천 제방이나 취·배수문 등을 관리하는 업무는 물론 시가지 여기저기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불법 건축물 단속도 어려웠지만, 그중에서도 합천읍 소재지 도로 노점상 단속이 가장 힘들었다. 그때는 지금 합천시장 뒷부분에 접해 있는 저잣거리와 그 앞 간선도로변에 노점상이 가장 많았다. 매일 늦은 오후가 되면 인근에서 생산되는 채소 등 각종 농산물을 가져 나와 좁은 보도에 펼쳐놓고 판매를 하여 행인들이 차도로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읍사무소 공무원 대부분이 지역 출신이었다. 솔직히 농촌의 어려운 실정을 잘 알기 때문에 노점상을 어느 정도 묵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부 주민과 언론사 기자 등이 군청이나 심지어는 경남도청에까지 전화하여 노점상 단속을 하지 않아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며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직원들이 수시로 나가 단속을 해야 했다. 이때는 업무담당자인 내가 항상 앞장서야 했기 때문에 가장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특히 5일마다 열리는 합천시장 날에는 대구, 고령, 거창 등지에서 많은 노점상인이 몰려와 시장 인근 도로 곳곳에 전을 펴 그 일대 모두 장터처럼 북적거렸다. 이런 날은 아침부터 읍 직원 모두가 현지에 나와 비상근무를 해야 했다. 외지 상인들이 도로변에 전을 펴지 못하도록 하고 시장 한쪽 구석 공터로 들어가라고 안내를 하지만, 사람이 별로 찾아들지 않는 그곳으로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항의를 해 그들과 오전 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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