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보다 환경이 더 중요하다
아침을 열며-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보다 환경이 더 중요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30 16:05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승식/한국폴리텍대학 순천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학과 교수
박승식/한국폴리텍대학 순천캠퍼스 컴퓨터응용기계학과 교수-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보다 환경이 더 중요하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이란,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진정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 같은 재료를 두고 트집을 잡지 않는다는 것으로 당나라 시대 이름난 서예가들인 구양순과 저수량의 일화에서 내려오는 고사성어로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고서도 자기 뜻대로 글씨를 잘 썼으며 저수량은 붓이나 종이가 나쁘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하여 당시 평가는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글씨를 쓴 구양순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고 한다. 간혹 요즘에도 무슨 일이 잘 안될 때 재료나 도구를 핑계 대는 사람에게 빗대어 쓰기도 한다. 이와 유사한 우리나라 속담에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위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과 같은 맥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시대 상황과 변천된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와 활용에는 우리 모두가 생각 해 볼 대목이 많은 부분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실무자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시설과 장비, 재료 등이 미비한 상태에서 능력만을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다면 이는 현실과 맞지 않는 그저 내려오는 고사성어와 속담에만 불과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가에서 투자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책 대학인 한국폴리텍 대학만 보더라도 시설, 장비, 공기구, 측정기, 컴퓨터 등은 생산 현장의 요구되는 설비 변화에 맞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투자되는 예산 또한 상당하다. 이는 생산 현장의 시설, 장비와 교육기관의 시설 장비가 맞지 않으면 교육기관에서 배운 기술로는 현장에서 다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붓과 종이 탓만 한다고 능력과 실력이 없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고 현 상황에 알맞은 붓과 재료에 문제는 없는지를 돌아보고 이에 따른 연구가 필요하다.

기계가공의 경우 2축, 3축, 4축, 5축, 다축 가공기, 또는 복합가공기가 요구되고, 4차산업, 인공지능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기계 장비만 개발되고 이 장비를 운영하는 공구가 고속 회전을 버텨 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한 최신형 컴퓨터를 구매했다고 이를 운영하는 컴퓨터보다 비쌀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있으나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는다면 이 최신형 컴퓨터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며 성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려오는 고사성어와 속담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현시대 상황에 알맞게 주변 환경에 문제가 없는지를 돌아보고 경쟁력 있는 종이와 붓을 준비해 두고 서로 비슷한 조건에서 누가 더 잘 활용하고 운영하여 제 실력을 발휘하는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주변 시설, 장비, 공기구, 측정기, 각종 재료 상태, 공구 상태 등을 수시로 둘러보고 챙겨봐야 할 것은 실무 담당자의 몫으로만 탓하지 말고 이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책임자의 몫이 더 커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동일선상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시합을 시작해야 정당한 경쟁으로 능력이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