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얼굴
아침을 열며-얼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14 15:4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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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
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지금 거울 앞에 마주한 당신의 얼굴은 보기에 좋습니까? 특히 필자 또래(45년생) 전후의 노인이라면 당신 얼굴이 윤기가 흐르고 온화한 모습으로 늙어 갔으면 좋겠지요? 주름 자글자글한 꾀죄죄한 모양새라면 살아낸 세월이 순탄치 않았을 것이고,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남은 날도 고단하겠지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양 하지와 우 상지, 두 눈마저 잃고 얼굴 반쪽에 화염으로 뭉그러진 전우가 있었습니다. 70년 유월이었지요. 전역 후 보훈병원에 찾아갔는데 안쓰러워 무슨 말을 할지 머뭇거리고만 있으니까 오히려 그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내 손을 굳세게 잡고 흔들었습니다. 흉측스런 얼굴, 보이지 않는 눈, 나무토막 같은 몸뚱이였지만 조국애와 전우애의 강한 힘이 남아 있었지요. 이런저런 추억과 현실의 얘기들을 한참 나누고 돌아섰습니다. 발등에 눈물이 떨어지더군요.

그러나 긍정의 마인드로 자신을 추스르던 전우도 날이 지날수록 부딪치는 현실의 벽 앞에서 쓰디 쓴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멀리 가 버렸지요. 누구를 탓할까요? 국민이 입술에 달린 진딧물 사촌인 정치꾼들 아닌가요? 빤질빤질 기름이 흐르지 않나요? 필자의 얼굴도 별로입니다. 뇌병변이나 파킨슨 환자 모양의 찌그러진 몸통에 이빨도 없는 반쪽 얼굴, 40kg의 말라 비틀어진 마른 명태 닮은 모습은 영락없는 아프리카 난민이지요. 곱게 늙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세요? 고엽제의 저주란 것을.

그렇게도 예뻤던 여학생 지선이의 얼굴과 몸이 사고를 당해 엉망이 되었습니다. 전신이 화상으로 긴긴 세월을 피부 이식, 사십 번의 산고를 치루었습니다. 말은 할 수 있었지만 여성의 전부인 얼굴은 흉한 상태로 남았습니다. 오그라들고 뭉툭해진 손은 기능을 상실했고요. 청춘의 낭만을 꿈꾸어야 할 소녀, 때때로 조소하는 듯한 모멸 서린 따가운 시선으로 육신의 고통보다 마음이 아파 얼마나 많이 울음을 삼켜야 했을까요?

사회복지사가 되어 불행을 나눔으로 승화시켜 보리라 굳센 믿음으로 국내 대학 수료 후 미국 명문대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석, 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복지 교수로 약자를 배려하는 삶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영상매체에 비쳐진 겉모습은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녀 인생 전체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화장품 사업은 망하지 않고 요즘은 연예인이 아니라도 젊은 남자들도 화장을 하고요, 성형외과 의사들은 돈을 깔고 산다나요? 성형 중독으로 요절하는 사람도 많다니 잘 보이고픈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나 봅니다. 양귀비에서 마이클 잭슨까지. 거울 앞에 선 당신의 얼굴이 선한 사마리아인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뒷구멍에서 호박씨나 까는 탐욕이 덕지덕지한 국회의원 같다면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서글플테니까요. 모두가 그리려는 마음씨 좋은 얼굴이 되기를 바래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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