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잠깐 유혹에 흔들리다(1)
기고-잠깐 유혹에 흔들리다(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14 15:48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잠깐 유혹에 흔들리다(1)

나는 시골 읍 소재지 변두리 마을에 살고 있다. 정확히 합천읍 소재지에서 국도를 따라 대구 방향으로 1.5km 정도 떨어진 마을이다. 7, 80여 세대가 살고 있다. 마을에는 16세대 규모의 연립주택이 한 동 있고, 그 외는 대부분 단독주택이다.

내 집은 이 마을 남측 외곽에 있다. 대지 200여 평에 건물은 2층 양옥이다. 아들 삼 형제는 모두 결혼하여 서울과 대구에 살고 있다. 1층에 내가 살고 있고, 2층에는 다른 사람이 세 들어 살고 있다. 집 앞, 뒤로 손바닥만 한 텃밭 두 뙈기가 있고 집 주위로 매실, 앵두, 포도, 자두, 살구, 감나무 등 유실수가 장식하고 있다.

과거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이 살던 집을 40여 년 전 둘째인 내가 형님으로부터 인수하여 새로 집을 지었다. 오랫동안 유실수를 심고 가꿀 때는 젊은 나이라 전혀 고된 줄 모르고 즐겁기만 하였다. 한해가 다르게 자라는 유실수들이 예쁜 꽃을 피우고 맛있는 과일을 제공하여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줄 때는 삶에 또 다른 생동감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는 텃밭과 유실수를 관리하고 풀 메는 일들이 조금씩 귀찮아지더니 나이 일흔 중반을 넘은 지금은 관리하기가 힘들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고 나면 솟아나는 풀 메기도 지겹다.

가끔 내가 이런 사정을 얘기하면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아파트 생활의 편안함을 자랑하며 나의 마음을 흔든다. 그때마다 나는 텃밭에서 채소를 자급자족하는 재미와 유실수의 예쁜 꽃도 보고 맛있는 과일도 먹는다며 맞대응을 한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친구들의 권유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도 한다.

나는 이 집에 대한 불만은 없다. 대지도 넓은 편이고, 콘크리트 슬래브 집으로 현재 사용하기에는 별 불편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집 주변이 유실수로 가꾸어져 있고, 작은 텃밭도 있어 전원주택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내 사후에는 아들 삼 형제가 펜션처럼 관리하면서 수시로 모이기도 하고 여름에는 교대로 쉬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우연히 대구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과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평소 내 생각을 얘기하였더니, 둘째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여 서운하고 당황스러웠다. 저네들이 모두 객지에 살면서 일 년에 몇 번이나 다니러 오겠느냐,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잡초가 우거지고 폐가가 될 것이라며 그대로 존치하는 것에 별로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