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비 오던 날의 조령관에서
진주성-비 오던 날의 조령관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20 16:0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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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비 오던 날의 조령관에서

인연의 맺고 끊음이 예사롭게 일상화되어버린 요즘은 만나고 헤어짐의 가치관에는 아무런 개념이 없다. 만남이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며, 서로가 의도적으로 헤어지는 것은 인연을 끊는 것으로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피하려고 애썼다. 옛적에는 그랬다. 사람 귀한 줄 알 때였다.

쉬어가라 붙잡고 자고 가라고 아랫목 내어주던 때다. 길동무하자면서 같이 걷고 말동무하자면서 마주했던 그 시절에는 오고 가다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니 의도적으로 헤어진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을 때야 헤어질 일이 없지만 안 좋을 때도 참으며 파경만은 피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웃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고 친구가 없으면 힘든 일을 못 하던 농경시대의 필수적인 노동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도리라는 관념이었다. 실익보다 도덕이 앞선 때였다. 절개니 의리니 지조니 하며 관념적 도덕성을 실용성에 앞서 이상으로 우대했었다. 그래서 만남은 하늘의 뜻이고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연이라며 헤어지는 것은 인륜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와 만나고 자라면서 친구와 만나고 장성하여 부부가 만난다. 부모와의 만남은 운명이고 친구와의 만남은 우연이고 부부의 만남은 인연이다. 천륜과 인륜, 필연과 우연, 부정할 수 없는 인연이다. 그러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헤어지는 것을 너무 쉽게 한다. 아름다운 이별이니, 헤어짐은 만남을 위한 또 하나의 시작이니 한다. 말장난이다.

오래전에 문경새재의 조령관까지 차를 몰고 갔었다. 지금은 걷는 길로 정비를 했다는데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이다. 비 오는 날이면 더 좋겠다. 그때도 비가 왔다. 조령관 옆의 언덕진 비탈에 자리 잡은 주막에서, 비 오는 날의 조령관의 풍광을 즐기며 지인과 파전을 시켜 막걸릿잔을 나누는데 헤어짐이 어떤 것인가를 읽게 했다. 희뿌연 비안개 속을 뚫고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이 조령관 용마루에서 방울방울 부서진다.

깨어진 빗방울은 한쪽은 남으로 또 한쪽은 북으로 튕겨서 기와지붕의 암막새 끝에서 낙숫물이 되어 한쪽은 낙동강으로 또 한쪽은 남한강으로 가야만 한다. 낙동강 강물은 남해로 가고 남한강 강물은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간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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