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보리밥(1)
기고-보리밥(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26 15:5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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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보리밥(1)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보리밥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 초입 화단에는 몇 개의 보리가 파랗게 피었다. 보리밥집이라고 밖에 나와 주인 대신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인사를 했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보리밭 그림이 한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림인지 사진인지 하여튼 살아서 일렁이는 보리밭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식당 안은 일하는 아줌마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금은 옛날처럼 식당도 힘들게 음식을 나르지 않고 서빙은 카트기가 있어 수월하다. 인건비도 줄이고 보기에도 안전하다.

주문을 하라며 식단이 적힌 메뉴판을 내밀었다. 손님들이 하도 많이 만져서 그런지 누렇게 변했다. 보리밥을 주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배도 부르지 않고 영양가도 없는 보리밥이 이렇게 왕 대접을 받을 줄 누가 알았을까! 4인분 주문을 하고 심심하니 보리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산골에서 자란 출신들이라 그때의 추억을 그리며 먹는 재미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배고플 때 보리밥 풀떼기 한 개도 귀하고 아까운 것이었다. 수다는 배를 고프게 하는 묘약이다.

주문한 것을 각자 앞에 놓고 입맛을 다시며 숟가락으로 보리밥을 뒤져본다. 구수한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힘도 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성 같다. 차라리 쌀밥을 먹었으면 더 좋았을까 하고 변덕스러운 마음이 보리밥을 내다본다. 보리밥과 각종 야채들 당근, 채 썬 상추, 볶은 버섯, 고사리, 콩나물, 무나물과 김 가루 올리고, 보리고추장, 참기름 두루두루 뿌려서 쓱쓱 비볐다. 한입 가득 넣고 먹는 맛은 좋았다.

비빔 보리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몇 끼 굶주린 사람처럼 친구들은 먹는 데만 열중을 했다. 나는 비벼 먹지 않았다. 그냥 보리밥 자체를 먹어야 씹히는 알갱이들의 맛을 알 수가 있다. 그다음에 보리밥과 야채를 맛보며 입안에서 비빈다! 이유는 비벼 먹으면 금방 배가 부르고 살이 찔 것 같아 나름대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앉아 느긋하게 먹은 티가 자야, 순이, 숙이 얼굴에 피었다. 특별식을 먹었다는 자부심에 흐뭇하다. 배는 부르지 않았다.

세상에서 돈이 많아 좋은 것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제일 행복하다. 보리밥 하면 아주 못살 때의 이미지가 떠올라 옛날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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