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보리밥(2)
기고-보리밥(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27 16:0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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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보리밥(2)

부모들은 농부로 살았기 때문에 손수 지은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이려고 이른 봄이면 들에 나가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서릿발이 내린 보리밭을 들락거리며 밟아주고 다져주고 풍년이 들기를 바랬다. 4월이면 청보리가 익어간다. 그때 보리 서리를 해서 간식으로 먹기도 하였다. 봄바람이 불면 보리밭은 온통 춤을 추며 일렁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마른 땅에 심은 보리밭은 푸름 자체가 가난한 시골 마을을 살찌우게 했다. 보리 줄기를 잘라 만든 피리. 삐리리 소리를 들으며 악기 대신 불며 놀았다.

푸른 들판이 차차 겨자색으로 물들고 푸른 수염도 노쇠처럼 변한다. 보리가 익어가는 동안 한 끼의 끼니도 이어 가는 일은 수월하지 않았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 사이에는 깜부기도 익어갔다. ‘깜부기’라는 제목의 시를 써본다.

병든 줄 모르고 먹었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배고픔 달래주는 간식거리 /보리밭을 헤집고 다녔다 /혼내는 주인은 없었다 //깜부기는 오디의 사촌 /반지르르 익은 것 /깜부기 입에 넣고 /침으로 뭉개어 /허허한 굶주림 면했다 //그때는 밥이라 해도 /꽁보리밥 반 그릇 /엄니는 자식 먹이려 /수저도 못 들고 맹물만 벌컥벌컥 /집안에 깜부기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어머니 가슴

깜부기의 사촌 뽕나무가 보리밭 사이에 서 있었다. 뽕나무 잎은 누에를 키워서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파랗던 오디도 차차 익어갔다. 새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기 위해서 보리밭을 지날 때는 보리의 수염이 날카로워서 꼭꼭 옷 속으로 들어와 살을 찔렀다. 맛있는 오디를 먹기 위해서는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뽕나무 아래 서면 우리들 키만 하고 어떤 나무는 더 컸다. 위를 올려 다 보면 햇빛을 받아 오디가 더 까맣고 윤기가 잘잘 흘러 반짝였다.

맛있게 보이는 것을 따서 먹고 싶은 마음 뻔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나에게 딱 맞는 나무 아래서 오디를 땄다. 밭 주인은 따로 있어 혹시라도 갑자기 나타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손가락으로 한 개씩 따서 입안에 넣고 먹었다. 단맛이 나고 햇빛을 받아 더 달콤하였다. 하나씩 먹다 보니 감질이 나서 한 움큼을 따서 입안에 가득 넣고 먹었다. 그 맛은 이루 말로 표현이 어렵다. 입가에도 찐한 오디 물이 묻어 있었다. 혼자 실컷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이만하면 됐다.

보리 베기가 시작되면 얼마나 바쁜지 하루해가 지는 줄 모르게 일만 하였다. 부모님들은 참 부지런하고 부지런하였다. 어른들의 세끼 밥을 챙기고 개구쟁이 우리들의 밥도 꼬박꼬박 챙겨가며 남보다 일찍 보리타작을 한다. 휙휙 도리께 질을 하며 보리 낟알은 마당에 가득하였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콧노래도 절로 나왔다. 보리타작을 하며 노동의 기쁨도 함께 나누었다. 옆집 철이네 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엄마는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보리밥 한 술이라도 나누어 먹는 사이라 서로서로 일을 도와가는 정다운 이웃이다. 보리 가마니를 차곡차곡 쌓아 놓고 여유를 부리며 여름밤의 고요함이 잠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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