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보리밥(3)
기고-보리밥(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28 15:5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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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보리밥(3)

저녁해가 질 무렵, 보리쌀 한 줌을 삶아서 밥을 지으며 한숨이 더 많이 들어갔다. 쌀밥을 하는 것보다는 보리밥을 하는 것이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어머니는 동네 방앗간에서 찧은 보리쌀을 옹기에 담아 우물가에서 싹싹 문질러 씻었다. 약간 미끄러운 기가 있어 깨끗하게 헹구어 낸다. 무쇠솥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붓고 손등으로 물의 양을 맞추고 솥뚜껑을 닫는다. 할아버지가 앞산에서 해 온 솔가지를 꺾어 넣고 불을 골고루 지펴준다. 불을 떼는 요령도 있어야 하고 나무도 아끼며 불을 뗀다. 어머니의 밥 짓는 일을 보는 것도 좋았다.

어머니 얼굴은 불꽃이 필 때의 모습은 편안하고 미소가 입가에 피었다. 밥을 한다는 자체가 즐거우며 가족들을 위해서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행복으로 여겼다. 뜸을 들이는 시간에 장독간에 있는 된장을 퍼서 몇 숟갈 넣고 무를 썰어 넣고 누렇게 변한 대가리도 없는 멸치 몇 마리 넣고 아궁이 속에 넣는다. 얇은 노란 냄비는 금방 바글바글 끓으며 구수한 된장 맛을 낸다. 반찬은 벌레가 뜯어 먹은 푸른 배추겉절이, 무채, 보리고추장 등이다. 마당 구석진 곳에 심어 놓은 상추도 잎이 누렇게 변하여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골라내서 깨끗하게 씻어 어른들 밥상에 올린다. 상추쌈은 언제 먹어도 맛있으며 배도 부르다. 두레상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맞대고 먹는 맛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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