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김영환 장군 추모재
진주성- 김영환 장군 추모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02 15:4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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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김영환 장군 추모재

법보종찰 해인사가 오늘(7월 3일) 4년 만에 고(故) 김영환(1921~1954년) 장군의 추모재를 연다고 한다. 해인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불기2567(2023)년 故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를 봉행한다. 코로나19로 인해 2019년 추모재 이후 열리지 못하다가 올해 4년만에 추모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김영환 장군은 1951년 8월 지리산 무장공비토벌작전의 일환으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상부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을 보호하기 위해 항명했고, 1954년 작전 중 순국했다.

김영환 장군은 공군의 상징인 ‘빨간마후라’를 창안했고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불가에서는 김영환 장군을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은인으로 기리면서 해인사에서 매년 추모재를 지내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퇴로가 막힌 북한군들이 합천 해인사를 점령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던 해인사가 남부군의 지휘부가 되었다. 공군사령부에서 ‘즉각 폭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이에 1951년 8월 당시 공군 제10 전투비행전대장이던 김영환 장군은 해인사에 숨어든 무장 공비 소탕을 위해 해인사 폭격을 위해 출격하게 된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해인사 상공에 도착한 김 장군은 부하들에게 “절대로 폭격하지 말라”면서 전시체제에서 군인의 생명과도 같은 명령을 거부하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냈다. 김영환 장군은 지휘관으로서 모든 책임을 질 각오로 해인사와 고려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것이다. 공비보다는 사찰이 더 중요하다며 사령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폭격하지 않은 김 장군은 상관에게 ‘숲이 짙어 적을 판별할 수 없다’는 이유를 둘러댔다고 한다.

김영환 장군의 탁월한 판단으로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 해인사는 이런 고 김 장군의 공적을 기려 지난 2002년 ‘고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를 해인사 사찰 내에 건립하고, 매년 음력 5월 16일 추모재를 거행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0년,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수호한 공적을 기려 김영환 장군을 금관문화훈장에 추서하고 그의 공덕을 기렸다. 올해 추모재는 7월 3일 각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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