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비 오는 날의 창가에서
진주성-비 오는 날의 창가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11 16: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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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비 오는 날의 창가에서

장맛비가 며칠째 오락가락한다. 진종일 진득하게 내리지도 않으면서 이따금 빗줄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세차게 내릴 것 같이 다부지게 시작하다가도 이내 그치며, 해가 구름을 헤집고 간간이 내려다보며 염탐을 한다. 이러니까 우산을 챙길까 말까 아침마다 망설이게 된다.

오늘 아침에는 현관문을 나서면서 우산을 챙겨 들고 한참을 싱긋이 웃었다. 거울 속에서 나를 지켜보던 내가 싱긋이 웃고 있어서였다. 그가 웃는 웃음의 의미를 얼른 알아차리고는 입이 더 귀를 잡고 늘어났다. 나를 보고 대뜸, “볼일 없는 사람이 할 일 없이 나가면서 뭔 걱정이래.” 하고 어깨를 툭 하고 친다. 맞다. 그게 나다. 백파 중아 하고 노는데 그런 소리 들어야 싸다.

매일 아침 날새기가 무섭게 앞 베란다에 나서서 동이 트는 건너편 산을 보고 옳은 일, 바른 일, 좋은 일, 하겠다고 다짐만 하고 한 번도 약속을 지킨 사실은 없다. 산 중턱의 아래쪽에는 부모님의 산소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일 아침에도 시치미를 딱 떼고 같은 약속을 할 것을 뻔히 알고 있다. 생활인인 척 구실로 삼으려고 문학 교실이라며 손바닥만 한 간판을 출입구에 걸어놓고 스무 평이 넘는 휑뎅그렁한 강의실을 혼자서 독차지하러 매일 같이 나간다.

남향이 탁 틔어서 비 오는 날의 전경도 볼만하다. 비 오는 날이면 거쳐 간 수강생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자메시지가 거미줄을 친다. ‘비가 오니까/그렇다//종일 오니까/ 참 그렇다//혼자 있으니까/ 더 그렇다//’라고 보냈더니 오지랖은 적셔도 마음은 적시지 말라느니, 전 굽는 냄새가 그립다느니, 별별 문자가 벌통 속 같은데, 딱 하나 눈이 꽂히는 것이 있다. ‘맞다’ 였다. 부연하면 흠이 될 것이다.

장마가 길어지면 누구나 마음이 눅눅해진다. 마음이 젖지 않는 사람은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장맛비가 오지랖을 적셔도 꿈을 적시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일 없는 사람만이 창가에서 마음을 적신다. 빗속을 가르며 삶의 활기를 싣고 질주하는 차들이 자랑스럽다. 우산을 받치고 오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지지고 볶아도 함께 비비대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건데 속절없는 이방인이다. 땀내의 진실한 거룩함을 알기나 하고 이럴까 풍월까지 한다. 빗줄기 걷어다가 가야금 현을 걸어// 열두 번 다짐하며 밤새껏 비운 마음// 허해져 울적한 심정 달래볼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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