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호칭의 문제
아침을 열며-호칭의 문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20 16: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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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호칭의 문제

두서도 없고 결론도 없는 이야기를 한 마디 하려 한다. 아마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호칭의 문제다. 어쩌면 우리 한국만이 아닌 만국 공통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부를 때 마땅한 호칭이 없다. 직접 부를 때도 그렇지만 지칭할 때도 마찬가지다. 서로 친한 사이라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다. 미국/유럽 등 서양에서는 좀 친해지면 남녀노소 구별 없이 친구가 되고 성 없이 이름만 부르는 문화가 있다. 그건 우리보다 확실히 좀 편리하다. 일본에서는 친구 사이에 성만 부르는 문화도 있다. 그것도 편리하기는 하다.

하지만 성이든 이름이든 그것만 부르는 경우는 의외로 그 범위가 아주 한정되어 있다. 대개는 성 혹은 성명 뒤에 직함을 붙여 부른다. 나이가 좀 들면 친구 사이에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사장(님), 국장(님), 부장(님), 팀장(님)…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호칭은 세월이 지나고 그 직함이 사라져도 계속 사용이 된다. 대통령님, 총리님, 장관님, 의원님…도 물러나고 죽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불린다. 내가 몸담은 대학 사회에서도 총장님, 학장님, 원장님, 처장님…은 역시 퇴직을 하고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얼마 전 CJ 등 몇몇 기업에서 위계 타파 어쩌고 하며 이런 호칭을 전면 금지시키고 ‘…님’ 혹은 ‘…씨’로 통칭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게 잘 정착이 되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렵게 ‘…장’이 되신 분들은 아랫사람들이 자신을 ‘…씨’로 부르는 게 몹시도 불쾌할 것이고 아랫사람 역시 몹시도 불편할 것이다. 양쪽 다 엄청 어색할 것이다. 영어의 미스/미스터나 독어의 프라우/헤어나 불어의 마담/므슈나 일어의 ‘…상’ 같은 것은 우리의 ‘…씨’보다는 좀 더 사용범위가 넓다. 그렇지만 그것도 복잡한 속사정이 없지는 않다. 남녀노소 혹은 혼인 여부에 따라 사정은 복잡해진다.

영어권에서는 한때 미스/미시즈 구별 없이 미즈라는 말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부를 때도 호칭이 마땅치 않다. 나는 일종의 제안-약속이라며 남녀 가리지 않고 ‘…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의외로 학생들 반응이 나쁘지 않다. 물론 고육지책이다. 예전 한때 널리 쓰이던 ‘…양’이라는 호칭이 사라져버린 것은 좀 아쉽다. 특별히 나쁠 것 없는 존칭이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공산권에서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동무/동지’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념적 편견 없이 생각해보면 꽤 편리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수년 전 공산권인 중국에서 1년간 지낸 적이 있는데, 한 번도 그런 호칭을 들어본 적이 없다. 거기도 사정은 우리보다 더 복잡하면 복잡했지 더 간단하지는 않은 듯했다. 시대별, 지역별로 ‘아내/남편’의 호칭을 나열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만도 이미 수십 개였다. 우편 등에서는 남자는 선생, 여자는 여사로 통일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일본은 ‘…상’이라는 말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비교적 편리하게 쓰인다. 남자(특히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는 ‘군’도 일반적이다. 국회에서는 총리도 ‘군’으로 호칭한다. 여자에게는 어릴 때부터 ‘상’을 쓰지만 ‘군’을 쓰는 경우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일본에서 쓰는 ‘…사마’를 벤치마킹을 한 것인지) ‘…님’이라는 호칭이 은행, 관공서 등의 창구에서 제법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언어라는 것 자체가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이니 통용이 되고 정착이 된다면 생명력을 얻게 된다. ‘대통령님’도 그렇게 유통시켜 정착이 된 느낌이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두서도 없고 결론도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호칭이 불편한 것은 분명하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개선의 노력은 필요할 것 같다. 뚜렷한 대안이 나타날 때까지는 현재처럼 너도 나도 당분간 ‘사장님/사모님’으로 지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진짜 높으신 사장님/사모님들은 좀 억울할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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