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내리사랑(1)
도민칼럼-내리사랑(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20 16:1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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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내리사랑(1)

내가 몸담은 진주 주님의 교회 점심 식사는 뷔페식이다. 진양호 가는 길목인 평거동 10호 광장에 원정 스카이빌딩에 자리 잡은 교회다. 7, 8십여 명이 출석한다. 대다수가 대학교수나 교직에 종사하는 분들이다. 학술 세미나나 연구모임 일로 해외에 나갔다 오는 사람들이 많다. 교인들은 이런 분들의 덕택으로 세계 각국의 초콜릿이나 과자를 맛보는 호사를 누린다. 외국에 출국했다가 입국할 때 방문했던 나라의 초콜릿이나 과자로 입국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찍이 외국 유학을 하고 자녀들이 대를 이어 유학하는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 덕택이다. 외국산 과자나 초콜릿으로 할애비의 내리사랑을 쌍둥이 손주 녀석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유아들이 잘 먹는 모 제과회사 제품의 웨하스 비스킷 크기만큼의 초콜릿들이다. 포장 색깔이 빨강, 파랑, 초록, 주황 그리고 모양도 갖가지다. 종류마다 한 개씩 집으니 한 주먹이다. 얼른 윗주머니에 집어넣고 식판을 채워 들고 와 식탁에 앉았다. 점심을 다하고 난 후는 커피타임이다. 떡도 떼고 초콜릿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렇지만 쌍둥이 손주 녀석들이 눈에 아른거리는 바람에 떡과 초콜릿을 먹지 않고 아끼고 있었다.

어렸을 때 기억이다. 등굣길에 구멍가게에서 비가나 눈깔사탕을 한두 개 사 먹어 보았었다. 나로선 고급 과자에 속하는 셈베과자 종류인 비스킷 과자류는 청년이 되고 나서 사 먹어 보았던 것 같다. 조금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초콜릿이란 일찍이 대해본 적이 없다. 70 평생을 해외라고는 나가 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던 내가 아니던가.

오후 행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버스를 탔다. 스마트 폰을 꺼내 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다 보니 무언가 물컹하며 찐득찐득한 촉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점심때 넣어 둔 초콜릿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거다. 깜짝 놀라 손을 꺼냈었다. 아뿔싸 초콜릿이 녹아내린 거였다. 아, 이걸 어떡하나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른쪽 손은 녹아내린 초콜릿들이 점령해 버렸다. 입은 옷을 공격할 것 같았고 다른 승객들도 피해를 볼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음 정류장까지 서 있기는 여삼추만 같았다.

사람들의 눈길이 뜸한 건물 모퉁이 벽을 방패 삼았다. 일단은 주머니 안에서 시위를 벌이는 놈들을 밖으로 꺼냈다. 이미 제 모양을 갖춘 놈은 하나도 없다. 우선은 길바닥에 쏟아 놓고 손에 묻은 액체를 해결해야 했다. 마침 버려진 종이상자가 있어 손을 닦고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었다.

그날 겪었던 물 건너온 놈들이 벌였던 소동을 아내와 딸, 사위에게 털어놓으면서 초콜릿이란 놈들의 특성을 알았던 거다. 35도만 되면 여지없이 액체로 변한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체온이 37도에 육박하지 않은가.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고 특성을 잘 안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초콜릿을 먹어 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들이 소동을 벌일 거라고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졌던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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