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윤동주의 서시
진주성-윤동주의 서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27 17:1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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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윤동주의 서시

우리 노인대학에는 참 인재가 많다. 보통 80대의 학생들 중에는 제 이름도 제대로 못 쓰는 분도 더러 계시지만, 그 어르신들의 순박한 인심과 살아온 경륜은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해박하고 인간적이고, 사회의 모범이 되는 분이 부지기수다. 아들, 딸 잘 길러 교수도 의사도 판사도 고위 공직자도 만든 훌륭하신 어른들, 그런가 하면 교직자도 공무원도 있고 사회에서 장(長)을 역임한 대단한 인사도 많으니 필자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우리 학생에게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는 만인의 교훈이 되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시장에서 30년째 기름집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고추와 도토리도 빻아 주고, 떡도 해 주고, 참기름과 들기름도 짜 주는 집인데, 사람들은 그냥 ‘기름집’이라 한다. 그 가게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는데 빛바랜 벽에 시(詩) 한 편이 붙어 있는데 윤동주의 ‘서시’다. 시장 기름집에 특이하게 무슨 시일까?

어느 날, 손님이 뜸한 시간에 그 시에 대해 물었다. “저 벽에 붙어 있는 윤동주 ‘서시’는, 붙여둔 사연이 있습니까?” “으음, 이런 말 하기 좀 부끄러운데.” “혹시 무슨 비밀이라도?” “그런 건 아니고. 손님 가운데 꼭 국산 참깨로 참기름을 짜 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국산 참기름을 짤 때, 값이 싼 중국산 참깨를 반쯤 넣어도 손님들은 잘 몰라요. 당신도 잘 모르실걸. 30년째 기름집을 하면서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욕심이 생길 때가 있어요, 국산 참기름을 짤 때, 중국산 참깨를 아무도 몰래 반쯤 넣고 싶단 말이지요. 그런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내 손으로 벽에 붙여놓은 윤동주 ‘서시’를 마음속으로 자꾸 읽게 되더라고요.”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구절을 천천히 몇 번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시커먼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30년 동안 시(詩)가 나를 지켜준 셈이지요. 저 시가 없었으면 양심을 속이고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하하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윤동주 선생의 서시는 첫 문장부터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자주 읽어도 읽을 때마다 울림을 주는 이 시는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 같다.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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