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집 나오면 즐거워(1)
기고-집 나오면 즐거워(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03 15: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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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집 나오면 즐거워(1)

지난 6월 9일~11일 2박 3일 부산을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 만나는 ‘샘터모임’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고향에서 살 때 앞집, 뒷집, 옆집,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친형제처럼 모여 살았다. 시집을 가서 각자 헤어져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 사는 순이와 오전 8시 21분 KTX를 타기로 했다. 신정 네거리 역에서 영등포역으로 갔다. 순이는 두 시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다 키도 크고 서글서글한 성격이 좋은 친구다. 사투리를 그대로 쓰고 있어 더 정감이 간다. 전광판에 나오는 시간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열차 탈 시간이 되었다. 7호차 5A 5B 좌석에 앉았다. 앞 승객과 가까이 앉아 가다 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예전에는 기차를 타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도 하며 고향이 ‘어디요’하고 물으면서 가는 여행은 인간미가 넘쳤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남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순이는 “갱자야, 우째 지냈노”하며 내 얼굴 표정을 살폈다. 나도 순이에게 “니도 잘 지냈냐?” 물어보았다. 소곤소곤 사투리가 무르익어 갔다. 둘만 알아듣는 말이지만 더 정겨움이 묻어났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벚꽃과 아카시아꽃이 다 져버린 뒤, 밤꽃들이 한창 피었다. 순이는 “저 밤꽃 냄새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 아이가. 니도 그렇제”하면서 냄새 맡는 시늉을 하였다. “응. 나도 밤꽃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밤꽃 향기는 다른 꽃향기보다 특이하다. 어른들은 밤꽃이 피면 홀로된 여인들이 집 밖을 나간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연인들은 햄버거와 우유를 사서 나누어 먹으며 서로 입가에 묻은 케찹을 닦아주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어쩌다가 시골 가는 길에 남편이 사주던 감자튀김과 군밤이 생각났다. 옛날 판매원 아저씨가 열차 칸을 오가며 팔던 “구운 오징어, 땅콩, 달걀, 달콤한 사탕이 있어요”하던 모습이 그려졌다. 순이는 “갱자야, 배고푸제. 뭐 사줄 것도 없고”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괜찮아. 너도 배고플 텐데 마트에서 맛있는 거라도 샀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하고, “코로나 때문에 차 안에서 먹지 못하는 줄 알았제.” 서로를 위로하며 웃었다. 신록의 계절에 다정한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

여행은 사람들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모든 것을 다 잊고 떠나는 순간의 행복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 먹고 살기에 바빠 평생을 일만 하다가 병이 나고 걷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밀려온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남편의 모습이 문득 창밖에 보이는 착각을 하였다. 가족과 회사 일을 하다가 이렇다 할 만한 여행을 하지 못했다. 유일한 여행은 고향에 있는 산소에 벌초하는 것, 묘사를 지내는 일 등 주로 시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상의 묘를 찾아 인사를 하고 풀을 베는 일도 힘은 들었지만 흩어져 사는 형제들을 만나는 일도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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