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내리사랑(2)
도민칼럼-내리사랑(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03 15:4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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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내리사랑(2)

초콜릿이나 과자를 얻게 되면 그 자리서 먹지 않는다. 주머니에 집어넣는 건 쌍둥이 손 주 녀석들에게 내리사랑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과자나 떡 같은 것들은 주머니에 넣고 왔던 때는 없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리고 나의 체면 유지를 위해서다.

내 나이 대여섯, 예닐곱 살쯤 땐가 싶다. 동네나 이웃 마을에 혼인 잔치나 회갑 잔치, 그리고 상갓집에 문상 갈 때 외에는 아버지께서는 좀처럼 외출하지 않으셨다. 어쩌다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고 나가시는 날은 나로선 땡잡은 날이 아닐 수 없다.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가신 지가 얼마지 않아서 나의 기다림은 시작된다. 아예 동구 밖에 나가 진을 치고 기다린다. 마침내 돌아오실 때는 으레 두루마기 안에 조끼 주머니에서 삶은 꼬막이며, 전과 대추 밤, 사과 조각 같은 먹을 것들을 꺼내주셨다.

문상을 마치고, 아니면 잔치마당에서, 술상을 받을 때는 아버지 혼자서 독상(獨床)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분들하고 어울려 받은 술상일 것이다. 안줏거리로 나온 것들을 조끼 주머니에 쑤셔 넣기는 쉬운 일이 아닐 테다. 아들에게 내리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얼마나 고심을 했을 것인가. 상위에 전(煎) 조각과 작게 썰어놓은 사과조각과, 대추 알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동석한 사람들에게 눈총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외출하고 오실 때는 주머니에서 꺼내주시는 사랑을 여지없이 받아먹기만 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자존심을 상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지금에야 냉장고 안에는 각종 먹을 것으로 꽉 채워져 있다. 과일 종류가 부엌 바닥에 상자째로 놓여 있으며 과자봉지들이 거실에 뒹굴고 있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그때 내가 어렸을 때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부모님들은 일터로 나간 후에는 먹을 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었다.

요즘에야 어린아이가 어린이집을 간다거나 유치원에 가면 간식거리가 넘쳐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는 끼니때에 꽁보리밥 외에는 간식이라고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일터에 가신 부모님께서 돌아오는 점심때나 저녁이 되어야만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물론 과자나 간식거리를 살 수 없는 빈곤한 형편이 큰 이유라고 해야 한다. 설령 돈이 있고, 부유하게 살더라도 십 리나 되는 면 소재지에 장터에까지 가서 간식거리를 자식들에게 사다 준다는 것은 어려운 시절이었다.

지금 나의 일상생활은 사흘이 멀다고 외출한다. 주일날 교회 가는 것부터 시작해 각종 문학 모임에 나간다. 그런가 하면 술친구가 부르면 나가야 하고 내가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이런 모임이 파하면 옛날 아버지처럼 먹을 것을 주머니에 넣고 왔던 기억은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신의 여가를 즐기기 위한 나들이를 하시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만 애경사에는 꼭꼭 참석하셨다.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마을의 애경사에는 꼭꼭 빠지지 않고 참석해 부조하셨던 덕분에 그때 간식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십 원 한 장 허투니 쓰는 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5일마다 서는 장날이면 거나하게 한 잔씩 마시고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온다. 그러나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뒷산 재 넘어 천수답에서 논바닥 다듬는 일만 하셨다. 평생을 궐련 한 개비 피우지 않으시고 담뱃대만 사용하실 정도로 근면하셨던 분이셨다. 그러나 양어깨를 짓누르는 가난이란 멍에를 끝내 벗어 버리지 못하시고 먼 길을 떠나가셨다.

흔히들 자식이 아버지를 닮는다며 부전자전이란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두 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옛날 아버지께서 행하셨던 주머니 안 사랑은 별로 베풀지를 못했었다. 일터가 직장이 아니고 자영업 일을 했기 때문인성싶다. 그런데 쌍둥이 손주 녀석들을 키우면서는 달라졌다. 옛날 아버지께서 두루마기 속의 조끼 주머니 안에 먹을 것을 넣고 오셔서 나에게 베풀었던 내리사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두 딸아이에게는 하지 못했던 주머니 속사랑을 한 계단 아래인 녀석들에게다. 옛날 아버지가 하셨던 그대로 흉내를 내는 손주 바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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