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집 나오면 즐거워(2)
기고-집 나오면 즐거워(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10 15: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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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집 나오면 즐거워(2)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정자나무 아래서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고향의 참다움을 배우는 것도 좋은 기회라 여겼다.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순이는 심심한지 먼 곳을 보다가 밤꽃 나무만 보이면 “밤꽃냄새가 난다”고 차창 밖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뭉게뭉게 피어 있는 푸른 유월의 밤꽃은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부산역에 도착, 역광장으로 내려가니 김해에 살고 있는 송이가 만남의 광장으로 먼저 마중을 나왔다. 파마머리, 갸름한 얼굴, 핑크색 티, 진주목걸이, 검정색 자켓을 입은 송이가 멋져 보였다. 셋이서 얼굴이 닿을 만큼 꼭 껴안았다. 송이는 인정이 많다. “먼데서 온다고 배고푸겠다. 저기 할매가 파는 엿이라도 묵고 포항에서 오는 진이를 기다리자”하며 엿을 사주었다. 엿판도 아니고 플라스틱 도시락통에 넣어 팔았다. 마트에 들어가면 간식이 많지만, 어릴 때 먹고 자란 엿이 최고였다. 엿가래를 파는 것도 아니고 다 분질러서 엿 모양은 나지 않았다. 입안에 달라붙지 않고 달콤한 엿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진이가 도착을 하여 만났다.

둥근 얼굴에 붉은 테 안경을 쓰고, 하얀 바탕에 줄무늬 티셔츠, 시원한 겉옷을 입고, 버들잎같이 생긴 머리핀, 시계, 팔찌, 꽃송이 같은 반지가 예뻤다. 한껏 멋을 내고 왔다. 엿은 다 먹고 난 후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셋이 입을 꾹 다물었다. 송이 입술이 반지르르한 엿물이 햇빛에 반짝였다. 진이는 립스틱을 바른 것으로 알겠지! 렌터카를 운영하는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접근을 하였다. 그들은 여자들끼리 여행을 왔다는 것을 금방 알아보고 말을 슬슬 붙이며 능글맞게 굴었다. 내가 총무를 맡아서 똑 부러지게 한마디 하였다. 서울말로 “아저씨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렌트는 필요 없어요.” 했더니 말을 걸려고 하다가 다른 곳으로 멀어져 갔다. 내가 아무리 서울말을 써도 사투리가 나와서 웃었다. 자리를 뜨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이가 전철을 타고 자갈치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지금부터 집은 잊어버리고 재미있게 놀자, 집 나오면 즐거워 하며 전철을 탔다.

자갈치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횟집들이 즐비한 삶의 터전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활기가 넘쳤다. 간판을 보며 걷고 있는데 식당 주인들은 서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고, 긴 머리를 묶은 여자는 아예 따라다니며 직접 구워 파는 생선은 자기 집 밖에 없다고 했다. 배도 출출하니 달콤하게 말을 하는 여자분의 친절한 사투리가 우리를 끌어 들였다. 횟집에서 생선을 손수 구워 준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멍게를 먼저 시켜 먹으니 입안에 사르르 단맛이 돌았다. 주인은 미역국, 파전, 도라지무침, 콩나물, 젓갈, 배추김치 등을 내놓았다. 커다란 접시에 여러 가지 구운 생선도 나왔다. 갈치구이, 고등어구이, 금태 또는 낀따루, 가자미 등이었다.

바닷가에 사는 송이와 포항 진이는 많이 먹는다며 멀리서 온 친구에게 많이 먹어라 하였다. 뼈를 발라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치는 뼈가 많아 먹기가 어려웠다. 처음 살 한 점을 떼어 입에 넣었는데 잇몸을 찔렀다. 조심하며 여러 가지 생선 맛을 보았다. 식당 안은 조용하고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숨 쉴 때마다 생선구이 냄새가 났다. 하도 흔한 구이라 먹어도 싱싱한 것인지 직접 구웠는지 믿음이 가지 않지만 친절해서 그나마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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