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기도하는 여인
진주성-기도하는 여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15 15: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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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기도하는 여인

아름을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굴피나무가 범상치 않은데, 밑둥치 앞에 제법 반반하게 깔린 돌판 위에서 기도하는 여인이 있다. 저 아래 개울을 건널 때부터 빼곡한 나무 사이로 얼른얼른 보였는데 하늘에 작정한 마지막 단장일까. 보기 드물게 하얀 모시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아직도 절을 끝내지 않는데 이를 어쩌나. 인기척도 못 내고 숨을 죽인 채 네댓 발자국 뒤에서 멈춰서야 했다. 땀에 젖은 저고리가 등에 찰싹 붙었다. 모시 치마의 사각거리는 소리일까. 아니면 한을 풀어내는 여인의 숨소리일까.

나뭇잎도 바람 소리를 못 내고 흐르는 개울물도 숨을 죽였다. 그저 새큰거리는 여인의 애끓는 소리만 들린다. 이대로 굳어서 선 채로 바위가 되어야 하나. 실낱같은 길은 굴피나무를 끼고 돌아가야 하는데 저 간절한 기도 앞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선 채로 굳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저토록 애절하고, 무슨 소원이 있어 저토록 간절할까. 바깥양반의 쾌유를 비는 걸까, 아니면, 눈이라도 한번 깜박여 보라고 손을 잡고 울부짖다 자식을 병실에 뉘어 놓고 인적 없는 외진 골의 굴피나무까지 찾아와서 빌고 비는 걸까. 얼마만큼이 애절함이고 어디까지가 간절함일까. 숨을 죽이고 고양이 발로 뒷걸음을 쳐야 했다.

폭포라고 했으니 개울을 따라가면 만나겠지 하고 없는 길을 만들며 개울을 더듬고 올라 최치원 선생의 호를 딴 고운동 폭포를 만났다.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른다. 바윗돌을 이리저리 건너뛰기도 했고 뒤엉킨 넝쿨을 잡고 기어오르기도 했는데 기도하는 여인의 잔상이 눈에 밟혀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힘들고 아찔했던 순간들도 기억에 없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으면서 왜 이리 오지랖이 넓어 가슴을 졸일까. 무력하고 무능함이 그저 서글프다.

산속의 적막은 어둠 살을 깔고 괴괴하다. 하산길은 그래도 실낱같이 아슴푸레한 인적을 따라 내려왔다. 굴피나무는 정적마저 숨을 죽인 빈자리를 지키고 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었기에 이토록 반들반들 닳고 닳았을까. 차마 그냥 갈 수 없어서 돌판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여인이 남기고 간 체취일까. 애절한 진액에 젖은 돌바닥은 간절함의 온기가 배어있다. 애타게 절을 하며 빌고 빌던 여인의 소원을 들어달라며 간절하게 빌었다. 굴피나무에서 여인의 숨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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